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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Dec 15. 2021

제주도에서는 귤이 공짜라고 그랬는데...

귤의 계절



제주도에 온 지 두 달이 흘렀다. 서울에 있을 때 우스갯소리로 분명 제주도에 오면 귤은 공짜라고 그랬는데... 무슨 소리? 도착한 그 순간부터  쭈욱 귤을 사 먹었다. 아마도 우리가 계속 귤을 사 먹은 이유는 뻔하다. 우리는 제주도에 지인이 없다.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이사 와서 오가다 인사드린 이웃 주민들은 있지만 딱히 친하게 지내는 분들도 없고, 그냥 우린 제주도에 딱 우리 가족뿐이다. 아무도 모르는 우리가 귤을 먹을 방법은 사 먹는 것뿐이다. 제주스럽게도 어딜 가나 귤이 가득가득 팔았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ㅇ마트 , ㄹㄷ마트 이런 대형마트에서 귤을 샀는데 이상하게도 신선하지 않았다. 산 직후 금방 썩거나, 껍질이 단단하지 않거나 해서 좀 의외였다. 제주도 대형마트 귤은 원래 이런 건가?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저렴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몇 번을 당하고 난 이후로는 사 먹을 수가 없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귤이 제철이 아닐 때였던 것 같기도 하고 혹은 때마다 마트에 파는 귤의 상태가 다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후 기왕이면 제주에 왔으니 귤을 사 먹지 말고 따먹자 싶어서 아이를 데리고 처음으로 귤 따기 체험을 갔다. 확실히 귤이 신선해서 그런지 일주일이 아니 2주 정도까지도 단단하게 버텨냈고, 확실히 금방 갓 딴 귤이어서 그런지 신선함이 달랐다. 우리는 그러면 다음부터 귤을 사지 말고 따올까 의논해 봤는데 그날 우리 가족이 딴 귤은 1kg당 만원, 즉 3명이 3kg 3만 원이라는 비용을 지불했고 가격이 조금 비싸 다시 갈까 말까 고민이 되었다. 귤 따는 비용이 조금만 저렴했으면 했다. 우리가 귤을 직접 따옴으로써 귤 따는 인건비도 아끼는데... 그러나 귤 따기 체험이라는 명분이므로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귤을 처음 따 보는 아이는 꽤 능숙했다. 귤밭에 취직시킬까?




그 이후 차를 타고 지나가다 도로에 있는  커다란 과일가게를 발견했다. 과일가게 멀리서부터 과일 사진으로 플래카드를 걸어서 홍보를 하고 있었다. 거기에 지나갈 때마다 눈에 띄는지라,  한번 들려보았다. 우리는 그곳에서 작은 사이즈의 귤 한 상자와 (무려 한 상자에 만원!) 그리고 아주 예쁘게 생긴 사과를 사서 돌아왔다. 그런데 맛있다고 했던 그 작은 귤이 새콤하다 못해 시어서 먹는 내내 괴로웠다. 얼마나 시던지... 왜 그랬어요 우리 여기 주민인데... 아마도 관광객 상대로 하는 1회성 마켓이 아니었을까 싶다. 도로에 깔린 광고에 비해 너무 실망스러웠다. 다신 갈 수 없을 테지. 그래도 비싼 과일을 안 사서 다행이다 싶었다.



시간이 흘러 지난주 아이 친구가 제주도에 놀러 왔길래 함께 귤을 따러 갔다. 그곳은 귤 따기, 동물 먹이주기 체험, 동백꽃 구경까지 모두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아이들이 귤을 따는데 몇 번 해본 그 솜씨로 정말 잘 따더라. 난 아이가 딴 귤을 열심히 까서 먹었다. 새콤달콤한 귤 맛이 제대로였다. 12월 초. 귤의 계절이어서 그랬을까 아님 그곳의 귤이 맛있었던 걸까? 나는 그곳에서 제공한 작은 봉투에 가득히 , 아줌마의 감성이 아닌 근성으로 봉지를 꽉꽉 눌러 귤을 따왔고 우린 일주일 동안 그 귤을 아낌없이 먹었다. 흐뭇했다. (데이트하던 연인들의 귤 봉지는 절반 정도만 차 있었다. 충격이었다 ) 




봉지 가득한 귤에서 아줌마의 근성이 느껴진다. 



귤이 또 떨어졌다. 




대체 누가 귤을 이렇게 많이 먹는 걸까? 사실 나는 귤을 매일 1개 정도밖에 먹지 않고, 아이는 귤을 많이 먹으면 배변에 문제가 생겨서 많이 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신기하게도 귤이 금방 사라진다. 아마도 범인은 남편일 것이다. 지금 글을 쓰다가 남편에게 "귤 좋아해?"라고 물어보니 "귤 좋아하지, 무엇보다 까기 쉬워서 먹기 편해 " 역시 예상되는 결과였다. 과일을 귀찮아서(왜?) 잘 먹지 않는 남편도 귤은 손쉽게 깔 수 있어서 매일 혼자 거의 먹는 편이다. 



아무튼 떨어진 귤을 채워놓고 싶어서 언제 사야 하나 오늘 살까, 내일 살까 고민이 되었다.  왠지 제주도에 사니 귤이 집에 떨어지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달까. 그래서 우린 이번엔 어디서 귤을 사야 할까 한참 회의를 했다. 아직 마땅한 판매처를 찾지 못했다. 지난주 이미 귤 따기도 했고, 대형마트의 귤은 피하고 싶고.... 우린 이제 어디서 귤을 사야 할까?



그런데!! 오늘 나는 저녁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고, 남편은 식탁에 앉아서 공부를 하고 있고, 아이는 혼자 즐겁게 놀고 있는 찰나였다. 남편의 눈이 갑자기 창문을 보며 커졌다. 앞집 아주머니가 우리 집 앞 창문으로 가까이 오셔서 우리를 보며 손짓을 하셨다. 우리는 사실 집에 드나드는 사람이 없는지라 사람이 와서 깜짝 놀랐다. 모자와 마스크를 벗은 앞집 아주머니의 얼굴을 못 알아본 남편은 손님이 와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나는 서둘러 마스크부터 찾아 끼고 아주머니에게로 갔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봬요" 바로 앞 집에 살지만 우린 거의 마주치지 않는다. 곧이어 아주머니는 귤 한 보따리를 내미셨다. 귤이 봉투에 가득 넘치도록 담겨있었다. "우와~ 무슨 귤을 이렇게나 많이 주시나요~ 잘 먹을게요." "유기농 귤이에요~ 생긴 것은 별론데 맛도 좋고, 약도 안쳐서 깨끗할 거예요"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사랑을 담아 인사를 드리고 귤 봉투를 안고 집으로 들어왔다.



우리 집에 귤이 딱 떨어졌는지 어떻게 아셨지? 우연인가 필연인가. 우린 그렇게 엄청나게 많은 귤을 얻게 되었다. 귤 바구니에 담아도 넘치는 것이 적어도 2~3주는 먹을 양이다. 귤도 크고 달고 맛있었다. 귤 하나씩 까먹으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역시 한국인의 정인가? 



우리도 이제 제주도에서 귤을 공짜로 먹게 되었다. 이사온지 두 달, 난 진짜 제주도 사람이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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