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처럼 제주에 살아요.

작지만 확실한 낭만

by Blair

우리가 제주도에서 집을 구하러 다니던 9월은 화창한 날씨의 연속이었다. 날씨도 어쩜 이리 좋은지 낮엔 해가 쨍쨍, 밤엔 폭우가 내려서 그다음 날 아침엔 공기도 얼마나 상쾌했는지! 햇살 좋은 날에 보러 다니는 제주집은 '웬만하면' 다 예쁘고 괜찮았다.


그러나!


이번 이사에서 우리 부부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들이 있었으니 나는 정원이 있는 주택을 원했고 남편은 제주시내와 가까운 거리면 무조건 오케이라고 했다! 그래서 처음 본 월정리의 타운하우스도, 영어교육도시 근처의 예쁜 2층 집도 탈락! 특히 제주시내의 이제 갓 지어진 아파트는 새집증후군 걸리기 딱 좋은 냄새를 품고 있었다.


제일 기대하지 않았던 지금의 우리 집, 뭔가 오묘한 그 촌스러움을 가진 집이 사진에서도 느껴졌다. 그런데 제주시내에서 새 집 냄새를 맡고 언덕을 올라와 이 집에 들어섰는데! 어머! 생각보다 괜찮은데? 집을 들어서니 정원이 펼쳐져 있었고, 집은 조금 어두웠지만 알록달록 색색깔로 꾸며놓은 집이 아기자기하게 느껴졌다.




정원이 있는 이층 집




"사진보다 훨씬 나은데?" 신혼부부가 1년째 살고 있는 집이라고 말했다. 집에 들어서며 맨 앞에 걸려있는 결혼사진은 너무 귀여웠고, 작업실의 'Marry me' 풍선도 정말 귀여웠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끌리는 이 집을 구경하며 나는 집에서 나는 약간의 나무 냄새? 쿰쿰한 냄새조차 달콤하게 느껴졌다. 삐그덕 거리는 계단을 올라 2층에 올라서니 저 멀리 바다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소리 지르고 말았다!





우와 저 멀리 바다가 보여!




이곳은 내가 바라던 제주의 낭만을 실현시키기 딱 좋은 집이었다. 아기자기한 정원과 저 멀리 보이는 바닷가. 우리가 연애할 때부터 꿈꾸던 2층 집. 그것만으로도 우리에겐 설레는 곳이었다. 우린 당장 계약했다. 몇 년 만에 여행 온 제주에서 집만 보고 다닌 지 3일 차. 우리에게 이 집이 다가왔다. 마치 우리가 이 집을 만난 것도 이 집에 살게 된 것도 운명인 것만 같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운명론자가 되었지?


요즘 내 인생이 그렇다. 우리가 그렇게 노력하고 원했으나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일이 늘어나게 되었다. 단편적인 예로 매일매일 치솟는 부동산 물가와 갑자기 문을 닫아버린 직장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 이후론 나는 나의 욕심을 내려놓는 일이 많아졌다. 결국 완벽한 인생을 만들며 살고 싶어도 인간의 힘으론 어쩔 수 없는 것들을 몸소 깨닫게 되었고, 너무 욕심부리거나 혹은 너무 기대하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다. 결국 그것처럼 바보 같은 일이 없다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다 이렇게 우연히 제주도에 살게 되고 또 이렇게 예쁜 집을 구하고 나니 어쩌면 인생은 운명에게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나는 운명론자가 되었다.
내일의 걱정은 운명에 맡겨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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