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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Mar 03. 2022

오늘은 귤 따는 날

제주집의 귤나무


처음에 제주에 도착했을 때는 지천에 귤밭이었다. 제주 곳곳에 보이는 귤밭에는 주황 귤이 가득, 정말 많이 열려있었는데 지금은 귤을 다 수확을 해서 나무들 만이 남아있다. 나는 그때만 해도 귤나무에 영원히 귤이 달려 있는지 알았다.



우리 집에도 귤나무가 있다. 한라봉 나무는 확실히 알겠고, 커다란 귤이 인상적인 하귤 나무, 그리고 천혜향인지 레드향인지 황금향인지 모를 귤나무가 있다. 아주 작은 귤나무를 포함해서 4그루의 귤나무가 우리 집 정원에 심겨있다.  가을에 제주로 이사 왔을 때는 연초록색이던 귤이 겨울이 되며 노랗게 노랗게 노랗다 못해 주황색으로 익어갔다. 비도 맞고 눈도 맞고 우박도 맞았던 귤나무이다. 오늘 우린 그 귤을 수확하기로 했다.



매일 바라만 보고 있어도 배가 불렀던 귤나무였다. 햇살이 가득한 날 탱글탱글 달린 귤은 얼마나 예뻤는지 모른다. 초록 초록했던 정원이 겨울이 되며 누런 잔디로 변하면서 정원이 별로일까 싶었는데, 거기에 주황 귤이 가득 달린 나무가 딱 지켜주고 있으니 겨울의 정원조차 얼마나 예뻤는지 모른다.



눈이 오는 날, 소복이 눈이 쌓인 귤나무는 정말 환상적이었다. 온 세상이 하얀데 딱 그 부분! 빼꼼하게 보이는 주황색 귤이 얼마나 예뻤는지, 나는 매일같이 그 귤나무를 보며 제주에 살고 있는 것을 실감했다.





눈이 오던 날, 귤나무




어느 날 옆집 아저씨가 방문하셨다. 우리 집 귤나무를 쓰윽 보시더니 '지금 따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라고 말씀하시고는 가셨다. 지금 달려있는 귤을 더 늦게 따게 되면 맛이 없어서 먹을 수가 없게 된다고, 단 저 큰 귤나무는 하귤이니 5~6월에 따면 된다고 하셨다. 안 그래도 엄마가 제주집에 오실 때마다 왜 귤을 따지 않냐고 얘기하시던 참인데, 우린 그 귤나무를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아서 내버려 둔 것이었다. 마침 집에 귤이 떨어졌길래 이제 그만 귤을 따서 먹어봐야겠다 싶었다.



생각보다 귤나무엔 귤이 많이 달려있었다. 가까이 관찰하니 이것은 보통의 일반 귤이 아니라 천혜향, 황금향 , 레드향 중에 하나인 듯했다. 그리고 그 옆엔 한라봉 나무가 있었다(다행히도 한라봉은 구별할 수 있다).  우린 가위를 들고 가서 귤을 따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에 다 따버릴 생각은 아니어서 몇 개만 따기로 했다. 물론 가위는 아이가 들었다. 아이는 제주에 와서 귤 따기 체험을 여러 번 다녀왔는데, 몇 번 다녀온 후 이제는 아주 능숙한 솜씨로 귤을 딸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따로 귤 체험하러 가지 않고 집에서 귤을 따게 되니 참 재밌는 경험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기와 다르게 질긴 귤의 줄기는 (혹은 귤 따기 전용 가위가 아니어서?) 가위로 자르기가 어려웠고 아이는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정원에서 귤을 따는 아이




내가 가위를 전달받아서 귤의 꼭지 부분을 자르는데, 정말 질겼다. 질긴 줄기 부분을 가위로 간신히 잘랐다. 그렇게 귤을 수확했다. 언제고 마음먹으면 또 딸 수 있을 테니 욕심부리지 않고 당장 먹을 정도만 땄다. 내가 딴 귤을 들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돌고래 소리를 내며 말했다. "엄마! 향이 너무 좋아요. 맡아보세요!" 마스크 사이로 전해오는 귤의 향이 정말 진했다. 향긋한 그 냄새. 귤껍질을 따로 모아 방향제로 쓰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수확한 귤을 집안으로 들고 갔다. 그리고 귤을 까먹어 보려는데 껍질이 너무 단단하게 붙어있었다. 아직 덜 익었나 싶어서 우린 그것을 며칠 정도 후숙 시킨 후에 먹으려고 거실 한가운데 올려두었다. 그리고 3일 정도가 지난 후에 한라봉을 하나 까서 먹어보았다. 정말 시었다. 정말 너무 시어서 먹으면 저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 그런 '강한 신맛'을 가진 한라봉이었다. 그러나 굉장히 신선했다. 그 한라봉 하나를 우리 가족 셋이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우리는 먹는 내내 시다며 소리를 질러댔고, 장히 즐거워했다.




오늘 수확한 귤




나도 어릴 때 잠시 살았던 집에 앵두나무가 있었다. 그래서 앵두가 열리는 때가 오면 , 학교 가기 전에 혹은 하교 후에 앵두나무에 올라가 앵두를 열심히 따서 먹었다. 양동이 하나 가득 앵두를 따 보았던 그때의 그 기억은 성인이 된 지금도 선명하다. 절대 잊을 수 없는 나의 어린 시절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우리 집 정원에서 귤을 따 보는 일, 우리 가족에게는 즐거운 첫 경험이었다. 어쩌면 귤나무가 있는 집에 살지 않는다면 평생 다시 해볼 수 없는 값진 체험일 것이다. 언젠가 아이가 커서 이 순간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내가 앵두나무 집에 살았던 날을 기억했던 것처럼. "엄마, 우리 귤나무 있던 집에 살았었잖아, 그 귤나무에서 갓 딴 귤은 향이 참 좋았어, 근데 그 귤 참 시었어! 정말" 아이가 제주에서의 생활을 이 정도로만 기억해줘도 이곳에서의 삶은 우리에겐 참 의미 있는 시간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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