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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Oct 29. 2021

한라산이 보이는 갈대밭에서

제주는 지금 완전한 가을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처럼 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는데 , 오늘은 제법 쌀쌀한 공기를 머금고 있었다. 아, 추워.

요즘처럼 아침, 오후 일교차가 큰 계절이면 아이 등원시키는데 애먹고 만다. 너무 두꺼운 옷을 입히면 아침 등원 길은 따뜻할 테지만, 오후엔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올 테고, 얇은 옷을 입히자니, 이렇게 공기가 차가운 걸. 지금은 가을일까, 겨울일까. 그런데 또 한낮에 햇빛이 얼마나 따뜻한지 모른다. 



며칠 전 엄마가 제주 집에 도착하셨다. 그리고 제주에 여행 온 엄마 지인에게 온 사진 한 장. 넓게 펼쳐진 갈대밭이 진풍경이었다. "엄마 여기 너무 예쁘다. 여기가 어디래?" "산굼부리래~ 우리도 가볼까?" 원래 엄마와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어서 그곳 음식점, 카페, 걷다 올 오름까지 다 계획해놨는데, 출발 직전 우리의 계획은 전부 변경되었다. 



그렇게 우린 산굼부리를 향해 떠났다. 꼬불꼬불 꼬불 길로 가느라 운전이 너무 힘들었는데, 나중에 돌아와서 새로운 길을 검색하니 난 내비게이션에게 당한 느낌.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느낌으로 산굼부리에 도착했다. 이 낯선 풍경을 보고 있자니 '내가 고등학생 때, 이곳으로 수학여행을 왔었지...' 하고 기억해냈다. 그때의 기억은 99% 정도 사라지고 그냥 산굼부리 분화구의 모습을 열심히 바라보다 '이게 뭐야?' 하면서 돌아섰던 기억 혹은 친구들과 산굼부리 앞에서 단체사진 찍던 기억 그리고 생각난 촌스러웠던 내  모습... 불현듯 떠올랐다. 








완전한 가을 




갈대의 모습은 장관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은색 물결이 흔들리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가을이구나. 완전한 가을이야. 가을은 이렇게 자연에서 만날 수 있지. 가을의 문턱에서 이사로, 정리로 여유 없이 지내다 보니 가을을 느끼는 것을 잊고 지냈는데 이렇게 반짝이는 갈대밭을 만나다니. 오늘 산굼부리에 가서 온전히, 충만하게 가을을 느끼고 왔다. 



제주에 오니 자연과 가까워서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높고, 넓고, 크고, 많고 그런 자연의 것들을 보며 나도 자연과 가까운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갈대밭 너머로 저 멀리 한라산이 보였다. 그 순간 나라는 존재는 그저 경이로운 자연을 바라보고 사는 아주 작은 티끌 같은 존재일 뿐인데라는 생각을 했다. 제주에 살면서 자연이 주는 힘을 충분히 받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로소 나는 더 따뜻해지고 강해 질 테고, 풍요로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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