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lair Oct 19. 2021

운명처럼 제주에 살아요.

작지만 확실한 낭만

우리가 제주도에서 집을 구하러 다니던 9월은 화창한 날씨의 연속이었다. 날씨도 어쩜 이리 좋은지 낮엔 해가 쨍쨍, 밤엔 폭우가 내려서 그다음 날 아침엔 공기도 얼마나 상쾌했는지! 햇살 좋은 날에 보러 다니는 제주집은 '웬만하면' 다 예쁘고 괜찮았다.  


그러나!


이번 이사에서 우리 부부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들이 있었으니 나는 정원이 있는 주택을 원했고 남편은 제주시내와 가까운 거리면 무조건 오케이라고 했다! 그래서 처음 본 월정리의 타운하우스도, 영어교육도시 근처의 예쁜 2층 집도 탈락! 특히 제주시내의 이제 갓 지어진 아파트는 새집증후군 걸리기 딱 좋은 냄새를 품고 있었다. 


제일 기대하지 않았던 지금의 우리 집, 뭔가 오묘한 그 촌스러움을 가진 집이 사진에서도 느껴졌다. 그런데 제주시내에서 새 집 냄새를 맡고 언덕을 올라와 이 집에 들어섰는데! 어머! 생각보다 괜찮은데? 집을 들어서니 정원이 펼쳐져 있었고, 집은 조금 어두웠지만 알록달록 색색깔로 꾸며놓은 집이 아기자기하게 느껴졌다. 




정원이 있는 이층 집 




 "사진보다 훨씬 나은데?" 신혼부부가 1년째 살고 있는 집이라고 말했다. 집에 들어서며 맨 앞에 걸려있는 결혼사진은 너무 귀여웠고, 작업실의 'Marry me' 풍선도 정말 귀여웠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끌리는 이 집을 구경하며  나는 집에서 나는 약간의 나무 냄새? 쿰쿰한 냄새조차 달콤하게 느껴졌다.  삐그덕 거리는 계단을 올라 2층에 올라서니 저 멀리 바다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소리 지르고 말았다!





우와 저 멀리 바다가 보여! 




이곳은 내가 바라던 제주의 낭만을 실현시키기 딱 좋은 집이었다. 아기자기한 정원과 저 멀리 보이는 바닷가. 우리가 연애할 때부터 꿈꾸던 2층 집. 그것만으로도 우리에겐 설레는 곳이었다. 우린 당장 계약했다. 몇 년 만에 여행 온 제주에서 집만 보고 다닌 지 3일 차. 우리에게 이 집이 다가왔다. 마치 우리가 이 집을 만난 것도 이 집에 살게 된 것도 운명인 것만 같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운명론자가 되었지?  


요즘 내 인생이 그렇다. 우리가 그렇게 노력하고 원했으나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일이 늘어나게 되었다. 단편적인 예로 매일매일 치솟는 부동산 물가와 갑자기 문을 닫아버린 직장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 이후론 나는 나의 욕심을 내려놓는 일이 많아졌다.  결국 완벽한 인생을 만들며 살고 싶어도 인간의 힘으론 어쩔 수 없는 것들을 몸소 깨닫게 되었고, 너무 욕심부리거나 혹은 너무 기대하는 일은 그만두기로 했다. 결국 그것처럼 바보 같은 일이 없다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다 이렇게 우연히 제주도에 살게 되고 또 이렇게 예쁜 집을 구하고 나니 어쩌면 인생은 운명에게 맡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나는 운명론자가 되었다. 
내일의 걱정은 운명에 맡겨버리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