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서울에 가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닌데, 아직 휴가가 아니라 계속 출근을 해야 한다는 핑계 아닌 핑계로 갈 수 없게 되었다. 어쨌든 아이가 서울로 가버린 덕분에 엄마인 내게도 휴가가 생겼다.
그러니까 아이로부터 한번, 일로부터 한번 이렇게 올해는 여름휴가가 두 번이 생긴 셈이다.
내가 제주에서 5박 6일을 홀로 보내는 것을 알게 된 친구가 자꾸만 물어봤다. "그래서이제 자유부인인데 뭐 할 거야?"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딱히 하고 싶은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동안의 인생을 되돌아보니 더운 여름엔 그냥 집에서 노는 것이 최고였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맞으며 가만히 누워서 티브이 보는 것이 최고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그렇게 더위를 타지 않아 여름은 에어컨 없이도 그냥 제주 집에서 지내면 되었다.
평소에 늘 추웠던 제주집은 이렇게 여름에 빛을 발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굳이계획도 세울 필요가 없었다. 별로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딱히 가고 싶은 것도 없고, 꼭 먹고 싶었던 것도 없고... 그냥 굳이 뭘 자꾸 하냐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있고 싶었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쉬고 싶을 때 쉬기'
이번 엄마의 여름휴가모토이다.
아침에 일어나 밥하지 않고 커피부터 마시는 휴가!!!
일단 휴가는 정말 좋았다. 일단 엄마는 하루 두 끼, 세끼 돌밥에서만 해방되어도 좋기 때문이다. 드디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밥부터 차리는 엄마에서 벗어났다. 만세!!!
일단 커튼을 열고 환기를 시킨 후에 다시 침대에 눕는다. 핸드폰을 하고 싶은 만큼 한 다음에 눈이 아파오면 책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계속 책을 읽다가 배가 고파 오면 빵을 조금 먹은 후 다시 책을 읽는다. 그리고 커피가 마시고 싶으면 커피를 가져와 마시며 또 책을 읽는 것이다. 그러다 지겨워지면 밥을 먹으러 나가던지 아님 드라마를 틀어서 보면 된다. 정정당당한 한량의 삶이었다.
정말 좋았다. 그동안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가족들을 돌보는 삶이었다면, 이제는 온전히 나만 챙기면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뭐가 하고 싶어졌다. 가장 먼저 운동이 하고 싶어 졌다는것이고,가만히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있다 보면 머릿속에 글감이 하나씩 둘씩 떠오른다는 것이었다.
일단 가장 많이 한 것은 책 보기가 아니라 누워서 원 없이 드라마 보기였고, 그다음은 카페에가서 커피마시기였다. 시원한 카페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글도 쓰고 책도 읽었다.. 일하고퇴근도 집이 아니라 바로 카페로 향했다.
집 아니고 카페로 퇴근합니다
일단 최대한으로 집안일을 하지 않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가스레인지는 거의 켜지 않았고, 청소도 빨래도 최소한으로 했다. 어지르는 사람이 없으니 집안이 더러워질일도 없었고, 내 옷 말고는 빨랫감이 없으니 빨래가 쌓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힘이 남았나 보다. 운동을 하게 되었다. 저녁엔 홈트를 하고 하루는 오름에 올라갔다. 그동안 두고두고 올라보고 싶었던 오름이었다. 신기하게도 낮에 이렇게나 더운데, 산은 시원했다.
30분 만에 정상에 올라가서 뷰를 감상하고, 사진을 찍고 순식간에 내려왔다. 오랜만에 오름에 오르고저녁마다 운동을 하니 몸이 가벼워지는기분이었다.
온전히 나를 위한 휴가였다. 정말 기뻤다.
어승생악 오름에 오르다
그런데 이 휴가에는 한 가지 허점이 있었다. 휴가 전날부터 목이 아프더니, 점점 더 심해졌다. 일단 휴가의 시작을 병원에서 출발했다. 병원에서 두 시간 동안 대기해서 진료를 보니 내가 느끼는 증상보다 목의 상태가 심각했다. 염증을 완화시켜 주는 주사를 맞고, 항생제와 약을 처방받아 들고 왔다.
아픈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실 휴가에 술이 빠지면 섭섭한 법인데, 하필 그 기간 동안 내내 약을 먹게 돼서 강제금주하게 되었다. 아... 휴가에 마시려고 사놓은 술들이 냉장고에서 날 기다리며 울고 있었다. 아쉬웠다...
그런데 그렇게 아픈 덕분에 잘 쉬고 잘 먹고 술도 끊고 운동까지 했더니... 되려 더 건강해진 기분이다.
이제 휴가는 끝이 났다.오늘은 아이가 돌아오는 날이다. 그동안 미뤄왔던 집안일을 했다. 이불 빨래를 하고, 청소기를 돌렸다. 저녁에 먹을 음식을 준비해 놓았다. 다시 엄마로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충분히 잘 쉬었기 때문에 몸이 가벼웠다.
기분도 좋았고 몸이 충전된 기분이었다. 엄마의 완벽한 여름휴가였다.
이제 공항으로 아이를 데리러 가야겠다. 해가 쨍쨍하니 날씨가 참 좋다. 아무래도 내일은 아이와 바닷가로 놀러 가봐야겠다. 서로 잘 충전에서 만났으니 남은 여름방학은 건강하게 잘 지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