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할머니의 꿈을 꿨다. 돌아가신 지 3년 만에 할머니가 꿈에 나오셨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오랜만에 할머니 생각이 났다.
어릴 적 할머니 집에 가면 할머니 침대 아래 공간에 들어가 고개만 빼고 누워있었다. 왜냐하면 할머니는 늘 침대에 앉아계셨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날 때기 전부터다리에 마비가 오셔서 걷지 못하셨다.그리고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일어서지 못하셨다. 할머니는 늘 앉아만 계셨지만 사람들을 이리저리 불러가며 많은 일을 하셨다.
돌아가신 친할머니의 꿈을 꿨던 날, 깨자마자 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돌아가신 분은 어쩔 수 없으니 살아계신 외할머니라도 자주 찾아봬야 할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이라도 할머니께 전화하고 싶은데 왠지 오랜만에 전화를 걸려니 멋쩍어 전화를 하지 못했다. 바보같이...
지난번 꿈을 꾼 후로 요즘 자꾸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난다. 돌아가신 지 3년... 딱 이맘때 찬 바람이불던 날이었다. 가을 하늘에 노랗게 은행나무가 익어 신나게 사진을 찍고 왔던 날... 할머니는 유명을 달리하셨다.
요즘 나는 어릴 적 우리 집에 할머니를 모시고 살던 그때가종종생각난다. 그때 내 나이가꼭 내 아이만 한 나이여서 아니면 이렇게 찬바람이 불 때여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때 거실에 할머니 방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오빠의 침대가 밖으로 나왔고 그 침대에서 할머니는 지내셨다.할머니는 움직이지 못하시니 꼭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엄마는 밖에 볼일이 많았으니까 그 외의 시간에 할머니의 심부름은 나의 차지였다.
다행히도 겨울 방학이었다. 학원을 다녀오는 시간외에는 할머니와 함께했다. 할머니는 움직이지 못하시니까 늘 할머니의 손발이 되어드리려고 노력했다. 할머니가 우리 집에 계시니 참 좋았다. 나는 저녁마다 할머니 침대 옆에 이불을 펴고 잠을 잤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우리가 학교나 학원에 간 동안 움직이지도 못하고 때로는 홀로 앉아만계시던 할머니는 참 심심했겠다 싶다.
우리 할머니와 외할머니는 지인이었다. 둘은 언니 동생하던 사이였고 그래서 아빠랑 엄마는 결혼을 하게되었다.
할머니 집에서 차를 타고 십여 분만 가면 외할머니 집이었기 때문에 명절에는 차 막힐 일도 없고 참 편했다.그래서 우리는 친가에도 외가에도 참 자주 갔었다.
외할머니는 성격이 호랑이 같았다. 주말에 늦잠 자는 우리를 깨우던 목소리는 조금 무서웠다. 그러나 할머니의 음식솜씨는 최고였다. 손도 크신 할머니는 늘 많은 음식을 맛있게 만드셨다. 지난번에는 할머니 집에서 만든 김치를 엄마가 보내주셨는데 엄마가 만든 것보다 훨씬 맛있어서 먹을 때마다 감동이었다. 그전에는 청국장을 만드셔서 얻어왔는데 그것도 정말 맛있었다.
내가 제주에 살게 된 이후로 무슨 일인지 외할머니에게 쌀이 배달되어 온다. 처음에는 많이 감사했고 그 후로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는 이제 농사를 못 짓는데도 쌀을 보내주시니 그래서 그렇다.
한 달 전에도 쌀이 도착했다. 쌀을 먹을 때마다 할머니 생각이 났다. 외할머니 생각을 하면 할머니도 떠오르고 할머니 생각하면 외할머니도 떠오른다.
어제는 쌀을 씻으려고 쌀을 꺼내는데 아이가 다가왔다. "내가 해볼래요" 해서 쌀을 꺼내주었다.그리고 아이는 물었다. "엄마 이 쌀은 누가 줬어요?" "응 왕할머니~" 그 순간 시계를 보니 할머니가 아직 주무실 시간이 아니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할머니께 안부 전화를 걸었다.
제주에 사니 친정도 못 가지만 할머니 집에는 더욱 갈 수가 없어 안부전화를 거는 것이 다라는 게 죄송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