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rry Christmas!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뜨자마자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고 가셨냐며 크리스마스 트리로 달려간다. "우와~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주고 가셨어요!!" 그리고 아이는 산타할아버지가 주스와 쿠키를 먹은 흔적도 알아챈다. 어제저녁 우리는 산타할아버지가 드신 것처럼 아이가 준비해놓은 주스를 마시고 쿠키를 먹어버린 후 그 흔적을 올려놓았다. (아이가 보는 만화에 산타할아버지가 오시면 드실 수 있게 주스와 쿠키를 준비해놓는 것을 보고 따라한 것이다.) 아이는 산타할아버지가 주신 선물을 열어보며 기뻐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도 흐뭇하다.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남편의 어릴 적 기억에는 매년 산타할아버지가 머리맡에 크리스마스 선물을 놓고 가셨다고 했다. 언제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알아차렸던 것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꽤 오랫동안 산타할아버지가 오셨다고 했다. 외동아들인 남편에게 오셨던 산타할아버지의 사랑은 이제 그 손녀에게 전해졌다. 잠시 서울에 다녀온 남편의 캐리어엔 시부모님이 주신 선물로 가득했다.
나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단지 유치원에서 산타할아버지가 오셨다 가셨다는 것을 들은 기억밖에 없다. 나도 머리맡에 양말을 두고 잤을까? 아니면 내 머리맡에도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고 가셨을까? 어릴 적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봐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특별한 크리스마스의 추억조차 없다. 특히 어릴 적엔 아빠가 크리스마스 날에도 일을 하셔서 그랬는지 색다른 크리스마스를 보낸 기억이 없었다. 그러나 매년 크리스마스에 교회에 가서 받아오는 선물은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줬다. 그래서 나에겐 아마 크리스마스에 산타할아버지 추억보다는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라는 것이 더 크게 느껴졌던 것 같다.
나는 성인이 되며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크리스마스에는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멋진 레스토랑을 가고 선물을 주고받았다. 내가 원하던 크리스마스였다. 그것도 잠시... 그 후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며 잠시 멈추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다시 가족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엊그제(23일) 우린 뒤늦게 크리스마스이브 날 식사를 할 곳을 찾았다. 찾았다기보다 집에서 100m 거리에 걸어서 갈 수 있는 스페인 레스토랑이 있어서 가볼까 생각했다. 마침 크리스마스 연휴의 예약은 모두 비어 있었고, 쉽게 예약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예약 확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크리스마스 예약은 마감되었습니다' 하면서 예약 취소 연락이 왔다.
분명 평소에 사람이 거의 없고, 방금 전 봤던 예약사이트에서도 크리스마스 연휴에 예약이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던 레스토랑이었는데, 갑자기 모든 좌석이 예약 완료가 되었다니 좀 당황스러웠지만 우린 어쩔 수 없었다. 우리가 늦은 탓이다. 갑자기 크리스마스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그래서 그다음 날 서둘러 대형마트에 갔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는지 크리스마스 이브날 오후의 대형마트는 주차공간은 만석이었고, 매장에는 크리스마스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붐비었다. (명절 느낌이었다.) 그래도 우린 그곳에서 스테이크용 고기와, 새우, 과일 등을 사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늦은 오후, 나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정원에서 로즈메리를 땄다. 그리고 집안으로 들어가 서둘러 요리 준비를 했다. 가장 먼저 스테이크 고기를 올리브 오일과 후추, 소금 그리고 갓 따온 로즈메리로 마리네이드해 두었다. 이렇게 해놓고 나면 시간이 지나 고기를 구웠을 때 훨씬 더 풍미 있는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감바스 알 하이 요를 만들기 위해 마늘을 채 썰고, 새우를 준비해놓고, 올리브유를 꺼냈다. 치즈와 토마토를 더해 샐러드를 준비해놓고, 스테이크 가니쉬 용 구울 야채로 감자와 양파, 브로콜리 그리고 버섯을 준비했다.
아주 간단한 요리만 준비했는데 그래도 시간이 꽤 흘렀다. 뒤늦게 준비한 재료들로 소박하지만 충분한 크리스마스 만찬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와인을 마시며 스테이크를 먹으니 더욱 맛있었다. 그동안 집에서 스테이크를 구울때면 레스토랑에 비해 조금 부족한 맛이라고 느꼈는데 이번엔 정원에서 따온 로즈메리 덕분인가 굉장히 풍미 있는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었다. 비록 멋진 레스토랑은 아니었지만 집에서 먹는 크리스마스의 저녁은 성공적이었다.
우리 집 크리스마스 만찬
어른들은 와인, 아이는 한라봉 주스그리고 남편에게서 선물을 받았다. 아이는 지팡이 사탕, 나는 초콜릿이 함께 있는 곰돌이 인형을 선물 받았다.지팡이 사탕은 크리스마스에 먹는 사탕이라고 아이가 먹어보고 싶어 하던 것이었고, 곰돌이 인형은 부드럽고 귀여웠다. 나중에 그 초콜릿을 먹어봤는데 정말 달콤하고 맛있었다. 곰돌이 인형은 곧 아이의 것이 되겠지만 그래도 잠깐이나마 나에게도 산타할아버지가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올해 크리스마스도 가족과 함께 집에서 소박하게 보냈다. 와인과 함께 스테이크를 구워 먹으며 레스토랑 못지않은 분위기를 느끼며, 우리가 함께 제주에서 보낸 크리스마스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 크리스마스 당일날인 오늘도 우린 외출을 하지 않고 창밖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하루를 보낼 생각이다.
Merry Christmas! 내년에도 크리스마스는 올 테다. 매년 아이는 자라서 어느 순간 산타할아버지가 부모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날도 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이가 언제까지나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자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훗날 우리 가족이 함께 보낸 크리스마스의 기억을 아주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살아가는 어른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