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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불안

by Blair

"나중에 서울에 가려면 경시대회라도 준비해 둬~"

"아니 얘는 수학머리가 없는 것 같아서요..."

"누가 수학머리 있어서 시키나~ 그 정도는 해둬야.... 어쩌고 저쩌고"



오랜만에 같은 또래를 키우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함께 이야길 나누며 도움이 되는 것도 있었고 별로 시답잖은 이야기도 있었는데, 집에 와서 한참이 생각나는 건 그 많은 대화 중에 딱 저 포인트였다.



그렇게 다시 엄마의 불안이 시작되었다.







벌써 제주에서 우리가 산지도 4년이 가까워가고, 아이는 여기서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제주 시내나 보통 도시의 학교 앞 풍경이 다르다. 보통 학교 앞에 줄줄이 자리 잡고 있는 학원, 분식집, 문구점, 음식점 그 어떤 것도 이곳은군데도 없다.



정말 달랑 학교 한 개가 전부이다. 근처에 중학교, 고등학교가 있는 것도 아니다. 딱 초등학교 하나가 전부이다. 그래도 나름 역사는 꽤 되었다. 그러나 특별한 점이 없는 이유로 최근 들어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참 큰일이다.



내가 어릴 적 지방에서 다니던 학교 앞에는 문구점이 무려 4군데가 있어서 매일 돌아가며 한 군데씩 들렀다가 하교하는 일이 일과였다. 그러나 게다가 당연히 분식집도 두 개나 있었다. 그리고 학교 주위로 학원도 여러 곳이 있었고, 그 밖에도 동네에는 학원이 지천이었고, 그것도 안되면 아파트 안에도 따로 공부방도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수십 년 전에도 풍경이 그러한데, 지금 학교 하나 달랑있는 이곳의 풍경이 되려 낯설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재 아이는 학교 방과 후 수업을 3년째 열심히 듣고 있고(다행히도 과목이 조금씩 바뀌고 추가되었다) 학원은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있다. 참고로 피아노 학원마저 옆동네 학교 앞으로 다녀야 한다. 참고로 피아노 학원의 컨디션은 내가 어릴 적 다녔던 피아노 학원보다 더 낡았다.



그래도 학교 앞으로 제주 시내에 있는 학원의 수학, 영어 학원차가 다니긴 하는 것 같은데 한 두 군데뿐이라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 뭐 제주에 사니까 사교육을 못 시키냐고? 아니다. 부지런한 엄마들은 라이드 하면서도 열심히 여기저기 다니며 시키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이곳에도 좋은 학원은 넘쳐난다. 그러니라 내가 사교육을 못 시키는 게 아니라 안 시키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아이가 1학년, 2학년때는 학원을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아직 어리니까... 겨우 1, 2학년인데 무슨 학원을 다니냐는 생각이 컸다. 그렇다고 아이가 집에서 논 것도 아니다. 아직 어리니 학원을 다니기보다 학교 수업에 잘 적응하고, 참여하고, 집에서는 학교에서 배운 것을 충분히 예습, 복습하였다. 물론 그 정도로도 충분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3학년이 되니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언제까지 방과 후 수업과 피아노 학원으로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요즘 들어 아이가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을 보았더니 조금 답답해서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동시에 수학 학원이 보내고 싶어졌다. 아직은 부모인 우리가 수학을 가르치고 있긴 한데 언제까지 이렇게 우리가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점점 커지는 것이다. 물론 학원을 보낸다고 전부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모님 우리가 가르치는 것보다 학원을 보내는 것이 훨씬 전문적으로 가르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인 것이다.



아마 나와 남편이 교육 분야에서 일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렇게나 오래 제주에서 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여기에서 산다면 이렇게 계속 사교육에 대한 고민을 할 것 같다. 학원이 지천에 깔렸는데 안 시키는 것과, 선택의 여지가 없이 갈 곳이 없어서 못 보내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 이기 때문이다.



물론 훗날 도시로 간다고 해서 하교 후의 시간을 사교육으로만 채울 것도 절대 아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느끼는 이 불안감이 싫다. 새 학기가 되면 될수록, 학년이 올라가면 갈수록 이런 고민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것이 싫다.



아니... 사실 어쩌면 아이가 3학년이기 때문에 이 고민은 대학을 갈 그날까지 하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AI가 이렇게 발전한 이 시국에 나는 여전히 아이 학원 걱정이나 하고 있다니 진짜 시대상에 맞지 않는 고민 같기도 하고 말이다.




학원.... 끙...







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 도서관에 간다. 매주에 몇 번씩이고 도서관에 들려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충분히 빌려온다. 지금 사교육 말고 해 줄 수 있는 것은 다양한 책을 제공해 주는 것뿐이다.



그러나 나는 아이에게 조금씩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이 모든 순간이 아이의 밑거름이 되리라 믿는다. 당장은 학원이 아니라, 수학이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을 책을 통해,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견문을 넓혀가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렇게 믿을 수밖에! 육아에는 어떤 것도 정답은 없으니까 내 아이를 믿고 가는 수밖에 없다. 엄마의 불안을 조금 잠재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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