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
딩크를 꿈꿔본 적이 없다. 누군가는 결혼은 하지 않아도 아이는 낳고 싶었다기도 하지만,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고 결혼도 하고 싶었고, 나와 남편을 꼭 닮은 아이도 여럿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분명 결혼 전의 나는 세명 정도의 아이를 낳고 싶었는데, 결혼 후 정신 차리고 보니 아이는 겨우 한 명 낳았다. 현실적으로 체력적으로 한 명뿐이 낳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만큼 키우기까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던가! 수년동안 나의 모든 포커스와 체력은 아이에게 향했고 그 결과 그동안 내가 할 줄 알게 된 것은 겨우 집안일과 육아뿐이었다.
아이는 이제야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고, 씻을 수도 있다. 크는 내내 입이 짧아 고민이었는데 이제는 뭐든 제법 잘 먹는 정도로 큰 것을 보면 아주 뿌듯하다. 분명 내가 나를 갈아서 널 키웠지 그렇고 말고 생각할 때가 대부분이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기쁘고 즐거운 마음만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많이 불안하고 버거웠다. 언제나 부족한 엄마라 스스로를 많이 책망했다. 그랬으니 당연히 둘째는 꿈도 안 꿨고 낳을 생각도 들지 않았던 것이 당연했다.
최근에 친구가 둘째 아이를 낳았다. 코로나 시기에 첫 아이를 낳고 키운 친구는 둘째를 바로 갖고 싶어 했다. 그러나 둘째 갖는 것이 어려워 터울이 생겨버렸다. 여러 노력을 기울여 둘째를 낳았다. 친구는 아이는 꼭 두 명은 갖고 싶다고 했다. 사실 여러모로 씩씩한 친구였기 때문에 둘이 아니라 셋넷도 낳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첫째를 키우는 것도 그렇게 어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늘 한 명 키우며 쩔쩔매는 나를 의아해했다.
둘째를 낳은 친구는 요즘 육아에 한창이다. 가끔 내게 아기 사진을 보내준다. 아기 사진을 보면 가장 먼저 드는 사진은 '아빠를 꼭 닮았군' 이런 생각이고 '요즘 내 친구 아기 키우느라 잠은 제대로 자고 있으려나?' 그리고 그제야 '신생아는 정말 귀여워' 그리고 '꼬물꼬물 아기 냄새'가 생각난다. 직접 만나 안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분명 얼마 전까지 아기 사진을 봐도 별 감흥이 없고, 아기 울음소리를 들으면 무섭고, 아기 자체만 보아도 고개를 돌렸는데....
요즘은 좀 달라졌다. 나도 아기가 안아보고 싶고, 아기 냄새도 맡고 싶고 등등... 그 둘째가 갖고 싶어 질 때 하는 생각이 이제야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까 첫 아이를 낳은 지 10년 가까이 되니 이제야 둘째 생각이 스멀스멀 드는 것이다.
너무 늦었군... 너무 늦었다. 이제 낳아도 10살 터울이라니. 그건 좀 심하다.
물론 이 전에도 이런 생각이 가끔 들곤 했다. 물론 아이가 웬만큼 컸다고 느껴졌을 때서야 든 생각이다. 거짓말처럼 힘들었던 순간이 아주 아름답게 묘사되면서, 그때로 다시 한번만 그대로 돌아가서 어린 아기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참 웃기다, 그렇게 육아가 힘들었으면서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니!!!
요즘 따라 가족이 네 명인 것을 보는 것이 그렇게 부럽다. 분명 아이 한 명에 우리 부부면 영원히 행복할 것만 같았는데, 그렇게 3명인 세모 모양 완전체가 될 것 같았는데... 이제야 4명의 네모가 부럽다니!
아이가 어릴 때에 겨우 젖을 떼었을 때 정말로 육아가 어렵고 힘들었을 때, 엄마가 자꾸만 둘째를 낳으라고 했다. 그때마다 한 명 키우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무슨 둘째냐며 엄마에게 화를 내고 짜증 냈다.
그러나 엄마는 언젠가 내가 느끼게 될 내 감정을 알아서 미리 권했던 것 같다. 엄마는 셋째가 낳고 싶었는데 못했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아들 하나, 딸 하나 낳아서 잘 살자 분위기여서 겨우 둘 밖에 못 낳았다고 했다. 그래서 아쉬웠을까? 그래도 이미 둘이나 낳았잖아...
아이 한 명과 두 명은 너무 다른 이야기다.
최근에 둘째를 낳은 사람이 쓴 브런치 글을 보았는데 첫째를 키우느라 몰랐던 것들을 둘째를 키우며 이제야 눈이 보이게 된다고 했다. 그 글을 본 순간 제대로 흔들렸다. '제발 나도 한 번만 더 느껴보고 싶다.' 첫째를 키우던 그때는 늘 불안하고 조급해서 제대로 느끼지 못한 것들이 참 많았기 때문이다. 뭐든 처음은 어려운 법이니까.
그러나 사실 둘째를 낳을 용기가 없다. 물론 현실도 어렵고 낳을 힘도 없다. 누가 아이도 다 키워주고, 둘째도 풍족하게 키울 만큼 돈도 왕창 주면 모를까, 겨우 나는 낳기만 하고 옆에서 지켜만 보는 상황이면 모를까... 다시 그걸 한다고 생각하면 앞길이 깜깜해질 것이 분명하다.
갖지 못해서 아쉬워하는 마음이 클 뿐... 현실을 제대로 알고 있긴 하다.
지금 아이를 다시 낳고 키울 때가 아니라, 새로운 것에 도전해봐야 할 시기인 것을 안다. 아이는 적어도 한 명 있으니 그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한 방법을 강구하고, 그리고 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해보며 멋진 삶을 위해 개척해 나가야 하는 것이 정답인 것도 아주 잘 안다.
하긴 가지지 못해 아쉬운 것이 어디 아이뿐일까...
오늘따라 아주 작고 귀여운 아이가 눈에 아른아른 거리는 것뿐이다.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