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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의 참기능

by Blair

얼마 전 감기에 걸렸었다. 원래도 추위를 많이 타기는 했지만 감기에 걸리면서 몸에 기운이 없어졌는지 유난히도 더 추웠다. 그래도 어차피 평상시 자동차를 타고 다니니까 옷을 적게 입어도 괜찮을 줄 알았다. 그래도 어마어마하게 추웠다.



추우니까 예쁜 옷도 소용없다. 옷이 아무리 많아도 늘 입는 옷만 입게 되었다. 그래서 치마도 입기 싫고, 원피스도 입기 싫어서 눈에 보이는 바지만 주야장천 입고 다녔다.



그래도 가지고 있는 바지 중에 가장 두꺼운 것을 입고 다녔다. 바지는 늦가을, 초겨울에 입는 두께이다. 분명 그 당시에는 두껍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한겨울이 되니 좀 얇은 느낌이 들고 춥게 느껴지긴 했다. 그래서 기모가 가득 들어간 따뜻한 바지가 한 개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들어간 옷 가게에서 기모가 가득 들어간 도톰한 바지를 발견했다. 게다가 가격도 참 저렴했다. '이렇게. 추운데... 바지나 하나 살까?' 바지는 입어보고 사지 않으면 실패하는 법인데, 직접 입어볼 수 있었다. 그럭저럭 무난했다. 그리고 '따뜻함'이 곧바로 느껴졌다.



분명 새해부터 쇼핑을 할 생각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미 나는 바지를 사서 입고 있었다.



우연한 쇼핑이었다. 그렇다고 충동구매는 아니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따뜻한 바지를 직접 입어보고 사야지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작 기모가 가득 들어간, 저렴한 바지를 하나 샀을 뿐인데 그 후로 삶의 질이 달라졌다. 분명 바지를 처음 사는 것도 아니었는데 바지가 정말 따뜻해서 벗을 수가 없었다.



그 후로 그 바지는 나의 겨울 애착바지가 되었다.

물론 지금도 입고 있다.



정말 따뜻합니다







주로 옷을 살 때 디자인을 가장 먼저 보곤 한다. 분명 내게 옷이 없어서 사는 것이 아니다. 그 색이 없기 때문에, 그 디자인이 없기 때문에 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산 새 옷은 언제나 날 다르게 보이게 만들어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정작 새 옷의 기쁨은 잠시고, 내 옷장에는 또 하나의 쓰레기가 늘 뿐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새 옷을 좋아하고 있었다.



그러나 올해 우연히 사게 된 기모바지 덕분에 쇼핑의 기준이 바뀌었다. 예쁜 색이거나 디자인보다 '따뜻함'이라는 실용성을 따져서 옷을 샀기 때문이다. 이 옷을 입은 후로는 다리의 온도가 적어도 3도는 따뜻해진 것 같고, 덕분에 매서운 추위도 조금 이겨낼 수 있게 되었다.



내 생애 옷을 정말 필요에 의해 사본적이 있던가!



이번에 처음으로 쇼핑의 참 기능을 알게 되었다.

진짜 필요한 것을 사는 것. 디자인과 멋이 아니라 실용성을 기준으로 구매하는 것을 말이다. 쇼핑 경력 30여 년 만에 드디어 꿀팁을 찾아내었다. 눈물겹다.



분명 화려하지는 않지만 기모가 가득 들어간 바지가 이리도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지 않았는가!



그런 의미에서 아무래도 다음번에는 모자가 있는 잠바를 구매해야 할 것만 같다. 다리는 따뜻해졌는데 모자가 없으니 분명 마스크를 쓰고 걸었는데도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쇼핑을 할 때 디자인보다 실용성부터 보고 사는 현명한 소비를 해야겠다. 아무래도 지금보다 쇼핑의 빈도는 늘어날 테지만 삶의 질은 상승할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겨울이 무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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