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아이처럼 생일을 오매불망기다린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맘때가 되면 기분이 좋고, 좀 설레기도 하다. 매년 뭐가 갖고 싶냐고 물어보는 동생이 있어서일테다.
물건을 줄이는 미니멀리스트로 살아가려고 애쓰다 보니 평상시 물건을 사는일은 지극히 드물다. 그러니 물건에 대한 마음을 저 멀리 두다가 갑자기 생일이라고 '내가 뭘 갖고 싶었지? 혹은 뭐가 필요했지?"'라는 상상을시작하면, 갑자기 온갖 것들을 떠올리다 보면, 여전히 갖고 싶은 물건도 사야 할 물건도 어찌나.많은지 여전히 남겨진 욕심과 그 양에 놀라게 된다.
'아... 나 뭐 사기 참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이제는 무엇을 사고 싶고 갖고싶어 하기보다,
그것도 필요 없고 그건 이미 있고... 이렇게 생각하는 삶이 더 익숙하게만 느껴진다.
그래도 잠깐이나마 무엇을 사볼까, 내게 무엇이 필요한가 상상해 보는 시간은 참 기분이 좋았다.
지난여름부터 그 컵이 사고 싶었다. 자동차가 불에타도 그것은 불타지 않았다던가, 냉장시간이 9시간이라던가 하던텀블러 말이다. 작년 남들 다 살 때도 쳐다도 보지 않았는데 올해 내 텀블러를 보니 어찌나 꼬질거리는지... 수많은 컬러와 다양한 사이즈 게다가 보온도 보냉시간도 길다는 그 텀블러가 나도 갖고 싶어진다.
올해도 추웠다. 한기가 드는 추위에 두툼한 잠옷이나 실내복이 하나 사고 싶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주 매장에 잠시 들렀는데 위아래로 도톰한 실내복이 출시되어 있었다. 구름같이 보송보송한 재질, 컬러도 아이보리, 연한 핑크 이런 색 위주였는데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졌다. 그렇다면 저것을 집에서 입고 있는다면 참 따뜻하고 행복하겠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흠... 이것도 갖고 싶어지는 군.
액세서리는 왜 이렇게 흩어져 있는지 그것들을 모을 보관함이 필요하기도 했다.
때때로 카페에서 사람들의 소음이 시끄러워서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을 사볼까 생각했었다.
아니면 머리카락을 빠르게 말릴 수 있다는 헤어드라이기를 사볼까도 생각했다.
아니면 얼굴에 사용할 화장품도 필요하긴 했다. 보송보송 볼터치나 혹은 하이라이터를 사서 얼굴에 바르면 더 예뻐질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작년부터 마음에 두고 있는 부츠를 사볼까,아니면 털이 가득 들은 부츠를 사서 발이 따뜻하게 다녀볼까 뭐 이런 생각도 하기도 했다.
잠깐 생각에 잠겼는데 이 정도는 순식간에 떠올랐다. 분명 생일 선물을 고르는 시간은 정말이고 즐거웠다.
작년에 동생에게 받은 정말 갖고 싶었던 옷솔
작년부터 친구들에게 선물을 보내고 받지 않았다. 받은 선물거의 돌려보냈다. 미안하기는 했지만되돌려보내고 받지 않으니 오히려 마음은 편했다. 그리고 작년부터 카카오톡에 뜨는 생일 알람을 지워버렸다. 그래도 정말로 연락올 사람은 생일을 축하한다고 연락이 왔다.
그리고 나도 친구 생일에 선물을 보내지 않았다. 일 년에 몇 번이고 친구의 안부를 묻는 것은 좋았으나,생일이라고 축하해 주는 것도 좋았으나
매년 무슨 선물을 사줘야 할까 묻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그냥 차라리 얼굴이나 보고 밥이나 먹으면 좋겠지 생일이라고 인사치레로 받는 그 선물을 진짜 원하는지, 좋아하는지도 모를 것을 주고받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직 선물이 오간다. 내게는가족이 있어서 선물을 주고받고 있다.얼마 전 생일이었던 오빠와 나와 나이가 같아 친구 같은 친척동생이다. 물론 부모님 생신 때도, 조카들 생일도 챙긴다. 그러니까 이제 생일선물은 딱 가족만 챙기는 것 같다.
그들은 편하게 내게 생일선물이 뭐 갖고 싶냐고 물어보고 있다.결국몇 달사이로 주고받는 것을 알면서도 가족끼리는 이 정도는 챙기고 올해도 선물이 오가고 있다.
선물... 사실 내 돈으로 사도 상관없는 것들이다. 그래도 며칠 동안이 참 즐거웠다. 결국 그들이 사주는 것은 그동안 내가 사고 싶었던 것이기때문일 것이다.
덕분에 내 안에 있던 쇼핑세포가 되살아 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잠시나마 두근거리기까지 했다.덕분에 즐거운 시간이었다.
여전히 내 안에는 물욕괴물이 살아간다. 생일선물이 주고받기 싫다면서, 올해는 생일선물을 뭐 받을까 고민하며 즐거운 괴로움을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