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커갈수록 물려받는 것들이 점점 귀한 일이 돼버렸다. 아이들 각자의 취향이 생기고, 그리고 아마도 이제 아기 때처럼 몇 번 입고 마는 옷이 없기 때문에, 예쁘고 깜찍하고 화려한 옷보다는 더 단순하고 실용적인 옷을 입기 때문에 그리고 몇 번 입고 세탁하면 낡아버리기 때문에... 아무튼 이런저런 이후로 물려받는 것들이 거의 사라졌다.
게다가 이제는 지인들과 멀리 살기 때문에 무엇을 물려받는 일조차 정말 일이 돼버린다. 물려받는 것을 가져오는 것도 어렵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이제 아이 취향에 맞는 옷을 사고, 신발을 사고는 한다. 사실 물려받을 때도 좋았지만 새것 사는 것도 좋다. 우리의 취향을 온전히 반영할 수 있는 쇼핑이라 그렇다. 게다가 이제는 아이가 커서 본인이 원하는 스타일의 옷도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것을 한 두 개씩 마구 사다 보면 별로 비싼 것들이 아니었는데도 쌓여 돈이 많이 들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물려받을 때는 물려받는 대로, 새로 살 때는 새로 사는 대로 좋은 것 같다.
그러던 중 정말 오랜만에 옷을 가득 물려받았다. 이곳에서 친하게 지내는 분이 여름옷을 한가득 물려주신 것이다. 보기에도 커다란 쇼핑백에는 옷이 수북이 들어있었다. 전부 깨끗하게 빨아서 차곡차곡 개어서 넣어주었다. 집에 돌아와 옷을 하나씩 꺼낼 때마다 향긋한 섬유유연제 향기가 났다. 그 향기를 맡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마치 그 향기는 그 옷들을 소중하게 여기다가 보내주었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겨우 기프트콘으로 대신했다. 그것도 안 받겠다고 하는 것을 박박 우겨 겨우 보답했다.
그랬더니 며칠 후에 지나가는 날 보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분홍신을 주셨다. 집에 와서 아이의 발에 신겨보니 정말 딱 맞았다.
아이는 신발이 예쁘다고 매일 같이 신고 싶어 했다. 분명 여름이 되어 신발을 새로 사고, 원래 있던 분홍색 신발도 있었는데 물려받는 신발을 훨씬 더 좋아했다.
어릴 때부터 물려받는 것에 익숙한 아이는 각 집에서 다르게 쓰는 섬유유연제 향을 맡을 때마다 'oo 언니 냄새난다' 하면서 입는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엄마는 왠지 모르게 뿌듯하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선 순환이 하고 싶었다. 사실은 옷을 물려주는 것을 친구가 정말로 좋아할지 아니면 귀찮아할지 몰라 혹은 이제는 입히는 스타일이 다를 것만 같아서 보내줄까 말까 망설였는데, 이번에 내가 받은 기쁨을 나누고 싶어졌다.
친구에게 보낼까 재활용품에 넣을까 고민하며 모아놓은 옷들이 있었다. 그러나 몇 가지의 옷들이 정말 예쁘고 새것 같아서 친구에게 주고 싶었다. 그래서 옷을 보냈다. 가득 찬 마음이 앞서서 장난감도 넣다 보니 무려 두 박스가 되었다.
이 물건들을 친구가 받고 좋아해 주길 바랐다. 나와 오랜 친구니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이야기해 주길 바랐다. 역시나 내 친구는 물건을 받고 정말 기뻐했다. 이 옷도 예쁘고, 저 옷도 예쁘고~ 신발도 마음에 쏙 들어했다. 그렇게 표현해 주는 내 친구가 너무도 고마웠다. 어쩜 내 마음과 같은지!
친구가 자꾸 선물로 보답해주고 싶어 사주고 싶어 하는 걸 한사코 말렸다. 사준 것도 아니고 물려준 것을 그저 잘 입어주고 써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무엇을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는 마음은 그런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을 고르고 골라,
깨끗하고 예쁜 것만 고르고 골라, 잘 입어줄 모습을 기대하며 보내는 것이었다. 사실 이것조차 기대하면 안 되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친구 생각을 하게 되니... 그로서도 충분하다.
내가 물려받는 것을 좋아하던 것은 옷을 덜 사고 아이 용품을 덜 사고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 나를 생각하는, 내 아이까지 생각하는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였던 것이다.
딱 그 마음이었다. 그래서 더욱이 고마웠다. 나에게 물려준 그 마음이 정말 감동이었다.
오늘 아침 아이가 분홍신을 신으며 기뻐한다. 언니가 물려줬다고 더 기뻐한다. 마치 선물을 받은 모습 같다. 아니 선물을 받았을 때보다 훨씬 더 좋아한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내 아이에게도 참 고맙다.
오늘은 분홍신 덕분에 충만한 하루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