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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기영 Apr 03. 2024

36. 나무새

일상에서 떠올린 단상

도심 빌딩 사이에, 봄이 왔는데도 메마른 나무가 서있다.


햇빛이 내리쬐고 있어 눈을 찌푸리고 올려다보 나무 꼭대기에 새둥지가 덩그러니 얹혀있다. 둥지에서 나온 어미새가 둥지 옆 마른 나뭇가지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어미새의 모습이 왠지 처연해 보인다.


햇빛을 쬐며 앉아있던 나는, 그 순간의 세상과 새와 둥지와 나무를 기억하고 싶어 핸드폰을 들어 사진에 담다.


눈으로 본 새는 분명 살아있는 새였지만, 사진 속 새는 솟대에 조각된 나무처럼 보였다.


익숙한 자연이 빛바랜 사진처럼 희미해지고, 낯설고 어색한 세상에서 어렵사리 구한 재료들로 조금씩 쌓아 올렸을 둥지가 그래도 제법 크고 아름답다. 


그나마 몸에 밴 습성으로 힘든 몸부림처럼 그의 생을 근근이 살아내고 있지만, 너무나 변해버린 세상이 힘에 부다.


돌보던 새끼들이 잠이 들자 잠시 둥지를 벗어나 가지에 앉아 세상을 바라본다.


햇빛은 따듯하고 바람은 적당히 시원하다.


앉아있는 나뭇가지가 지나치는 바람에 흔들렸지만, 그 흔들림에 집중하며 앉아있는 것이 오히려 시름을 잠시나마 잊게 해 준다.


새끼들은 언제 자라나 날갯짓하며 나를 떠나갈지, 나를 떠나면 살기 힘든 세상에서 새끼들은 어찌 살아갈지, 새끼들이 떠나가고 나면 나는 남아있는 생을 어찌 살지, 항상 협조적이지 않았던 세상을 한없이 바라보며 그는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 아래 세상의 나를 닮은 인간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자, 순간 움직이지 못하는 검은색 나무새가 된다.


비록 현대문물인 도심 속 빌딩 앞이지만, 땅과 멀어진 나무 위에서 햇빛과 바람을 맞으며 고고히 앉아, 땅 위에서 어렵사리 살아가고 있는 나 같은 인간들의 안녕을 빌어주는 그러한 솟대 위의 나무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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