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올림픽 개막식.
평화의 상징 비둘기 떼가 잠실의 푸른 하늘을 힘차게 날아올랐다. 그 장면은 웅장했었고, 그 장면을 바라보는 나의 가슴은 뭉클했었다.
"구구구구"
익숙한 소리가 귓가에서 들린다. 안방 베란다 밖 실외기에 비둘기 두 마리가 앉아 구르륵거리고 있다.
거실에 앉은 내 귓가에 선명하게 들리는 비둘기 울음소리가 무척 거슬린다. 게다가 비둘기가 떠나고 나면 실외기 위에는 그들의 배설물이 쌓여간다.
거실에 앉아있던 나는 성큼성큼 안방 베란다로 걸어가 비둘기를 내쫓는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비둘기는 큰 소리를 내거나, 베란다 창문을 두드려야만 귀찮은 듯 몸을 두어 번 움찔거리다 푸드덕 날아간다. 어느 날은 나를 놀리듯 푸드더덕 날아갔다 곧 다시 실외기 위로 돌아와 앉기도 한다.
물론 비둘기도 땅 위 공간을 사용할 권리가 있으나, 인간들이 아파트를 높게 짓는 바람에 그들이 날다 앉는 공간을 빼앗긴 측면도 있다.
하지만 극지방을 제외한 전 세계에 서식한다는 비둘기들은 인간과 많은 공간을 공유하고, 알을 낳아 번식하고 배설하며 지구의 땅과 공간을 자유자재로 걷고 날아다닌다.
어디 그뿐이랴. 먹이를 찾아 뒤뚱거리며 대지를 걷는 비둘기들은 그 곁을 걷는 소심한 사람들을 놀라게도 하고, 하늘에서 배설하는 그들의 배설물은 산성이 강해 각종 동상과 건축물을 뒤덮어 부식에 이르게도 한다.
지금은 종의 번식에 성공한 비둘기가 바야흐로 인간이 살고 있는 공간 곳곳에 찾아들어 인간의 생활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검색사이트에 비둘기를 치면 '비둘기 퇴치'라는 단어가 바로 눈에 띈다. 지구상의 생명체들이 서로 융화하며 살아가는 것이 타당하겠으나, '퇴치'라는 단어를 쓸 정도로 앙숙이 되어버린 사람과 비둘기의 관계가 서글프다.
88년 하늘을 박차 오르는 비둘기를 가슴 벅차게 바라보던 나도, 주거지를 같이 공유하게 된 그들을 무척 미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비둘기가 나를 찾아와 가까이할 때 평화의 비둘기가 우리 가정의 평화를 깨치는 불화의 비둘기가 된 것이다.
나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일정한 경계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비둘기가 갑자기 찾아오듯, 개인의 삶의 경계선을 불현듯 침범하면 가깝던 관계가 오히려 불편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의 삶의 경계를 자꾸 침범하는 비둘기를, 사람을 내 곁에서 쫓아내고 있다. 훠이 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