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 자라난 내가 서울에 직장을 얻어 상경하였다.
아무도 아는 이 없는 직장생활이 외롭고 힘들었다. 결혼을 하여 반려자와 함께 의지하며 살고 싶었다.
결혼 후 3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고, 그렇게 아내는 나의 애인이며 가장 친한 친구이자 외로운 인생길의 반려자가 되었다.
뒤돌아 보면,
결혼을 하자마자 마치 결혼 후의 경로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 험로가 펼쳐졌다. 아이들이 생겨나고 그들을 양육하고, 나와 아내의 삶의 현실을 타개하고, 부모님이 나이 들어 도와드리는 삶의 길이 연속되었다.
마주한 경로를 어찌어찌 따르다 보니 아이들이 어느덧 결혼해도 좋을 나이가 돼있었다.
몇 년 전.
큰아이가 본인은 결혼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다. 나는 그의 벼락같은 선언에도 놀라거나 걱정되지 않았다. 그의 마음상태가 충분히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게 되면 분명히 나와 같은 인생경로를 따라야 할 것이니 아이에게는 결혼이 오르기 힘든 험준한 산맥으로 보였을 것이다.
지금은 큰아이의 마음이 바뀌어 결혼은 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하지만, 현시대에 결혼하여 삶을 꾸려나간다는 것이 큰 도전인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함에 기인한 것인지 결혼 연령이 높아지고, 각종 미디어에 결혼을 꼭 해야 하는가에 대해 갑론을박이 펼쳐지는 장면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결혼은 여러 사람의 삶이 결부되면서 홀로 사는 삶에 비해 고난도의 수학공식이 적용되고 그로 인한 책임감과 스트레스가 가중되게 만든다. 그리하여 이혼이 잦아지고 '졸혼'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고 이도 저도 아니면 각방을 쓰기도 한다.
이러한 여러 난제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혼의 결과가 제법 성공적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의 아이들이 나에게 결혼은 해야 되는 거냐고 묻는다면 나는 흔쾌히 'yes'라고 답할 것이다. 이중적 이게도 결혼으로 인해 힘든 여정이 시작되지만, 또한 그로 인해 험로를 함께할 수 있는 동반자를 얻고, 외로운 노후를 행복하게 구가할 수 있는 큰 뒷배가 생겨난다.
홀로 사는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나이 들어 혼자 아프고 혼자 죽는 외로움일 게다. 반면 결혼 이후의 삶을 같이 헤쳐 나온 배우자는 미우나 고우나 노년기에 큰 위로가 되고, 결혼으로 인해 얽히고설켜 힘들었던 가족들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니 결혼은 할만한 것 아니겠는가.
두 아이는 먼저 출근하고, 출근준비를 마친 나와 거실에 잠시 앉아 있던 아내가 "요즈음이 결혼생활 중 가장 평온한 시기인 것 같아"라고 독백하듯이 말한다. "나도 그런 것 같아. 아이들 출가시키고 우리 둘만 남으면 더 행복하게 살아보자고" 아내에게 화답하며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출근길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