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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기영 Jun 20. 2024

40. 아내의 생일

일상에서 떠올린 단상

"덥다, 더워~"

빠르게 덮쳐오는 여름의 속도에 작은 비명이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온다.


국가 간 긴 전쟁이 이어지고, 개인들은 정치진영, 이익집단, 성별로 나뉘어 다투고, 세계 곳곳에선 지진과 해일이 빈번하다.


이러한 와중에 역사 속 사소한 개인의 삶은 계속된다. 나와 아내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얼마 전, 아내의 생일이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나는 일어나자마자 아내 앞에서 'Happy birthday to you'를 완창 하였고, 아내와 분위기 있고 음식값이 제법 비싼 음식점에 들러 점심을 먹고, 부부가 다 좋아하는 오페라도 관람했다. 돌아오는 길엔 케이크를 사들고 집에 들어와 아내와 함께 생일을 축하했다. 나로서는 비교적 완벽한 계획을 수립하여 실행하였으나, 아내의 얼굴이 썩 밝진 않았다.


이제는 장성한 아이들이 그들의 스케줄로 인해 함께 축하해주지 못하였기 때문인 듯했다.


그간 아이들이 장성하면 그들의 삶이 있으니, 그들의 섬김을 기대하지 말고 우리 둘만의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자고 아내에게 반복적으로 이야기해 왔다. 그러나 아내는 머리로는 이해하고  동의하였으나, 가슴으로는 완벽히 받아들이지 못한 듯 아이들이 함께하지 못함을 못내 서운해했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길고 끈끈한 인연은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아닌가 싶다. 부모들이 나름 사랑과 정성을 쏟아부어 긴 시간 아이들을 양육하나, 아이들이 장성하면 독립하여 그들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 이는 인간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는 하나의 동물 개체로서의 생존 법칙이다. '생존의 법칙'으로 이해한다면 그간 부모의 노력도 사랑과 정성이라기보다는 당연히 해내야 하는 숙명으로 바꿔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지금의 나나 아내 부모님들 기는 것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우리들과 다르게 잘해주길 바란다면 이 또한 그리 합리적이진 못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어머니는 예전의 살가운 내가 아닌 것 같다고 서운해하고, 나의 아내는 예전의 아이들이 아닌 것 같다고 서운해한다.


평소 나에게 감정 없이 맺고 끊음이 너무 확실하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아내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아이들이 장성해 부모의 섬김이 조금 부족해졌다 할지라도 의 삶을 스스로 살아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 아니겠는가.


그러하니 아이들의 일정의 번잡함을 기뻐하고, 우리기념일은 둘만의 비밀스러운 즐거움으로 오롯이 남겨 놓아도 충분 것이다.


밤까지 연락이 없던 아이로부터 늦은 생일축하 전화가 걸려왔다. 아내는 아이에게 서운함을 표하긴 했지만, 그제야 얼굴이 밝아진다.


역시 나의 사랑과 노력만으론 아내를 100% 기쁘게 하긴 어려운가 보다. 부모. 자식 간의 정을 끊어내지 않는 한 아이들의 섬김도 얹어져야만 100%가 달성되는 듯싶다.


여보! 지금부터 시간을 두고 차곡차곡 연습을 쌓아 앞으로는 우리 둘만의 사랑만으로도 100% 행복해졌으면 좋겠네. 아이들의 섬김은 기대치 않던 덤으로 생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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