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곽기영 Jul 02. 2024

41. 프렌치 수프

일상에서 떠올린 단상

이날은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일요일 오전. 세상이 고요하고 하늘은 회색이었다. 회색 하늘의 미세한 틈에선 얇은 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바람도 스산하게 불었다.


영화관에 도착해 자리에 앉았다. 이른 아침인데도 주변에 관객이 많았다. 조명이 꺼지고.


깜깜한 영화관 공간 속에  파란 하늘을 꿰뚫고 나온 햇살이 가득하고, 흰색, 초록색, 노란색, 주황색, 보라색 등 온갖 색상을 가진 시골  밭이 화면에 가득 펼쳐진다.


프랑스 시골에서 살아가는 중년의 남녀가 요리사로서, 미식연구가로서 긴 세월 함께 요리하며 서로를 인정하고 서로를 의지하며 잔잔한 사랑을 그려낸다. 


남주인공의 한 사람만을 위한 요리가 펼쳐지고, 계속 결혼을 거부해 오던 여주인공의 승낙을 드디어 얻어낸다. 


화창한 가을. 햇빛이 온통 쏟아지고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이 묻어나는 야외에 차려진 긴 테이블과 풍성한 음식, 잘 차려입은 신사숙녀들을 앞에 두고 남주인공이 결혼을 발표한다. 


어디선가 본 듯한 한 폭의 명화 속 풍경이 살아 움직이며 스크린에 펼쳐지고 있었다.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 야외 식사가 끝나고 남녀가 노란색 가을 들판을 거닐며 대화를 나눈다. 남주인공은 가을이 좋다 하고, 여주인공은 여름이 좋다 한다.


첫 빗방울, 첫 눈송이, 첫 장작불, 첫 새순. 매년 돌아오는 처음이 환희였고, 자신이 매일 다루는 숯불처럼 여름의 타는듯한 느낌이 좋다던 여주인공은 인생과 사랑을 불태우고 첫 죽음으로 돌아간다.


여주인공이 떠난 주방과 주방기구, 식탁을 아무 소리 없이 비춘다.


비탄에 빠져있던 남주인공은 여주인공의 요리를 다시 되짚으며 힘을 얻는다. 요리 속에 녹아내린 사랑, 그리고 추억.


크레디트가 올라가며 흐르는 음악이 너무 좋아 영화의 감흥을 되새기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마스네 작곡 오페라 <타이스> 중 '명상곡')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빗방울이 멈췄으나, 여전히 햇빛은 없었다.


그러나 영화관에서의 환한 햇살, 살아 있는 색감, 옆에서 들리는 듯한 숨결, 사랑과 인생이 눈가에 어른거리며 차창 너머 저 멀리 하늘을 가르고 희뿌연 햇살이 넘실대었다.


출처: 네이버(영화 프렌치 수프의 야외 식사 장면)




매거진의 이전글 40. 아내의 생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