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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를 거두기까지

by oj


남편은 씨를 심는 걸 좋아한다. 과일을 먹고도 심어본다고 하질 않나 베란다에 쌈채소를 심지 않나.


퇴사하고 3년 동안 텃밭가꾸기를 했던 남편이었다.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주말농장이었다. 5평을 분양 받아 차로 5분 거리의 주말농장을 시작했다. 처음엔 길게 두 고랑을 일궈준 밭에 검은 비닐을 덮고 쌈채소와 가지, 호박, 고추, 방울 토마토와 옥수수를 심었다. 처음 치곤 제법 많은 수확을 거두었다. 매일 물을 주러 다녀야하는 번거로움만 감수하면 아주 보람 있는 일이었다. 첫 해는 열심히, 즐겁게 물을 주러 다니고 5~6월쯤 되자 쑥쑥 자라서 수확한 농산물을 주변에 나누는 기쁨도 제법 컸다. 물론 매일 물을 주러 다닌 남편의 수고 덕분이다. 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따라다녔을 뿐이다. 아삭한 고추를 나눠줄 때도 정성이 가득 들어간 거라고 큰소리 치며 생색은 내가 다 냈다.


두 번째 해에는 참외와 고구마를 처음 심었는데 그게 또 너무 잘 되었다. 참외는 밖에서 사는 맛과는 다른 아삭함이 있었고, 고구마도 제법 캐서 꽤 뿌듯했다. 특히 고구마 줄거리를 여름 내내 볶아 먹었다. 맛은 좋았지만 고구마 줄거리를 까느라 새까맣게 된 손톱을 보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할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해에는 남편이 드디어 농사에 시들시들해졌다. 귀찮아하는 것이 보였다. 수확도 예전만 못했다. 그냥저냥 고추와 가지와 호박만 열심히 먹다가 가을에 무를 심은 것이 아주 잘 되었다. 크지 않고 적당한 크기의 무를 캐서 친정 엄마가 동치미를 담그는데 쓰셨다.


그렇게 끝난 주말농장이 아쉬웠는지 긴 통 두 개를 사와서는 베란다에 쌈 채소를 심었다. 햇빛을 받긴 해도 영양이 부족한 탓에 잘 자라진 못했다. 시간도 오래 걸렸지만 자라서 몇 번은 맛있게 먹었다. 그중 겨자채가 잘 자라서 나중엔 겨자채만 심었다. 그리고 화분에 고추와 방울 토마토를 심었다. 지저분해지는 베란다를 보면서 난 이제 그만 좀 심으라고 했지만 말릴 수가 없었다.


꽃은 피었지만 열매를 맺지 못한 고추 모종을 1층에 사시는 어머님네 갖다드려 베란다 유리문 밖에 두니 주렁주렁 달리기 시작했다. 너무 신기했다. 우리집에 놔둔 방울 토마토는 키만 쑥쑥 컸지 토마토가 달리진 않았는데 밖에서 비를 맞는 고추는 윤기가 날 정도로 잘 자랐다. 빨간 고추가 될 때까지 두신 어머님도 베란다에 나가실 때마다 흐뭇해 하셨다.


가을엔 다시 무씨를 심었다. 그게 자랄까 싶었다. 괜한 일 좀 그만 만들라고 성화를 했지만 열심히 물을 주고 거름까지 주었더니 어느 날 무청이 무성해지더니 무가 자라는 게 보였다. 너무 신기했다. 정성을 들이면 뭐든 결실을 본다.


잔소리한 것이 무안해졌다. 베란다에 나가서 빨래를 널을 때마다 푸릇한 무청과 무에게 인사를 나눈다. 언제쯤 뽑아볼까 생각 중이지만 보는 것만으로 신통방통해서 뽑기가 아까울 듯하다. 옆에 심어놓은 파까지 보기만 해도 흐뭇해진다.


5평의 작은 텃밭을 가꾸는 데도 열매를 거두기까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다. 하물며 밭농사를 크게 짓는 사람들은 어떠할까. 거친 손과 거무스르해진 얼굴이 그 노고를 말해준다. 어디 농사뿐이랴. 자식 농사는 말할 것도 없다. 열매를 얻기까진 수고와 헌신과 관심과 노력이 동반된다. 거저 얻어지는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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