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은중과 상연>ㅡ
여자들의 우정은 참 난해하다. 정확히 말하면 여자들의 심리가 복잡하다. 남자들의 우정은 단순 명확한데 비해 여자들은 속을 모를 때가 많다. 이렇게 복잡미묘한 여자들의 우정을 보여준 영화가 <은중과 상연>이었다.
너무 다른 환경의 두 친구. 아버지의 부재로 가난하게 사는 은중, 다 가진 부유하면서도 똑똑한 상연. 이 둘은 애초부터 환경도 성격도 너무 다른 아이들이지만 서로가 결핍된 것을 가진 친구를 동경하다 보니 친구가 되었다.
상연은 가난하지만 어디서든 사랑 받는 은중이 부러웠다. 자신에겐 늘 냉정한 엄마도 은중에겐 한없이 다정했고, 동생에겐 웃지 않던 오빠도 은중에겐 미소 지었다. 상연은 그걸 견디지 못했다. 자신이 사랑 받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져 은중을 질투한다. 어린 상연이 갖는 질투와 투정은 이해해도 그런 감정이 20대까지 이어지는 걸 보면 상연의 결핍의식은 단순하지 않았다. 속 깊은 상처로 자리잡아 은중의 것을 빼앗고 싶은 충동으로 발전한 것 같다.
오빠 상학이 성 정체성을 겪으며 극단적 선택을 한 일로 엄마는 자신을 더 미워하고, 오빠를 자살에 이르게 한 사람이 자기란 죄책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오빠의 심정을 알고는 오열하는 장면에서 상현이 오빠에 대한 죄책감과 상실감, 그리움이 복합적으로 전달되었다.
말 한마디 없이 떠난 상연을 대학 사진 동아리에서 다시 만났지만 또 한 번 갈등상황을 맞닥뜨린다. 상학이란 선배를 좋아해서 그와 먼저 사귀고 있는 은중을 질투한 상연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군에 입대한 선배에게 편지 쓰고 면회도 간다. 은중은 잠시였지만 상연에게 흔들린 상학에게 결국 이별을 고하며 큰 상처를 입을 때 친구 때문에 매번 힘들어하는 은중이 좀 답답했다.
은중에게 다신 보지 말자면서 또다시 일방적으로 떠나는 상연에겐 아직도 상처 입은 어린 아이의 모습이 내재되어 있다. 그걸 극복 못하고, 가장 친한 친구에게 일방적으로 상처주며 자기 자존심을 지키려는 것 같았다.
사회에 나가서 영화 산업에서 일하는 은중앞에 또다시 나타난 상연은 더 악랄해진다. 은중의 작품을 빼앗고도 당당한 친구에게 "아무도 널 받아주지 않을 거야."라는 모진 말을 남기며 애써 잊었는데 10년 만에 나타난 상연은 자신이 죽어간다고 말한다.
당한 것이 많은 사람 입장에선 황당하고 이기적인 친구의 처사에 참 어이없을 것이다. 아프다고 다 용서되는 건 아니어도 죽어가는 친구를 차마 외면할 수 없는 이유는 어린 나이에 오빠도 떠나고, 사랑받고 싶었던 엄마도 떠나고, 훌쩍 돌아온 상연을 혼자 외롭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위스로 조력자살을 하러 떠나는 친구와 마지막을 함께 하며, 웃으면서 추억을 만든다. 끝까지 곁을 지켜준 친구가 있어 상연은 편안하게 눈을 감는다. 죽어가던 엄마의 마지막을 지켜본 상연으로선 조력자살에 희망이 보였다고 했다. "내가 나일 때 떠나고 싶다."는 그 마음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 건 억울한 일인데 마지막까지 비참하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고생했다"며 친구에게 눈물로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은중의 마음은 어땠을까.
사랑하면서도 미워한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을 책상위에 올려놓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은중은 말한다. 애증의 관계가 이제 끝이 났다. 동경하던 친구와의 우정, 절연, 배신, 이별, 영원한 헤어짐을 경험한 은중은 수많은 감정을 겪으면서 한층 성장한 듯했다.
서로에게 좀 더 솔직했다면 어땠을지, 얼마 남지 않은 삶이 아니었다면 상연은 은중에게 찾아와서 과연 진심어린 사과를 했을지, 만약이란 생각을 많이 했다. 두 친구의 입장이 모두 이해되고, 복잡미묘한 심리상태와 그들의 우정, 생의 끝에서도 애써 태연한 척하는 의연한 상연의 마음까지 가슴 뭉클하게 보여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