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가르친지 25년이 넘어간다. 본격적으로 학교일을 시작한 때가 30세였다. 둘째를 막 낳고 5개월 때 사교육비를 줄인다는 목적으로 학교에서 방과 후 특기적성 강사를 대거 모집했다. 이에 맞춰 전공자들을 뽑아 논술 강사 교육을 시키고, 교재를 준비해서 학교에 투입시켰다.
그때부터 시작한 일을 지금까지 놓지 않고 있다. 적성에 맞는 논술 강사는 잘 선택한 일이었다. 10여 년 회사에서 일한 노하우로 회사에서 나와 면접을 보고 학교에 들어갔을 때까진 방과 후 수업이 활성화 된 시기였다. 오후 시간을 활용하는 학교 강사는 아이들 양육하면서 일하기 편한 조건이다.
경력이 쌓이니 여기저기 방문 수업도 맡게 되면서 가르치는 학생 수가 늘어났다. 나중엔 학교를 그만 두고 방문 수업에 치중했다. 힘든 줄 모르고 신나게 일하면서 어느 덧 거쳐간 많은 아이들을 만날 기회가 있을 때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한 학부모님은 두세 살 터울의 세 남매를 모두 맡기셨다. 첫째인 남학생은 책을 좋아했고, 둘째인 딸은 야무졌고, 셋째인 남학생은 조용한 순둥이였다. 막내와 나이 차이가 좀 있다 보니 형과 누나의 근황을 가끔 묻는데 어느새 형은 대학에 갔다가 군 입대를 하고, 누나는 간호대에 입학해서 열심히 공부 중이라고 했다. 아직 중학생인 셋째는 순둥이지만 확실히 막내 티가 난다. 가끔 사진을 보여줄 때면 내 기억속의 아이들과 너무 달라 믿기지가 않는다. 몰라보게 변해 아주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아 순간순간 놀란다.
큰아들이 수능 때 배정 받은 고사장에 같은 반 친구를 함께 픽업했다. 같이 가는데 차에서 인사를 나눌 때 이름이 독특해서 초등학생 때 학교에서 가르치던 여학생이란 걸 알게 됐다. 그 친구도 나를 기억하고 있어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아들은 신기해 했다. 초등학생 5.6학년 때 가르치던 아이가 고3이 되었으니 6년이 지난 셈이다. 그럴 때면 빠른 세월 앞에 놀란다. 아이들이 크는 동안 그만큼 세월이 흘렀으니...
10여 년 전 암수술을 받은 이후부턴 일을 절반으로 줄였다. 3개월 쉬고 하반기부터 다시 일하게 되었을 때 감격했다. 기다려주신 학부모님들께도, 건강을 회복해서 다시 일하게 된 것도 너무 감사했다. 다만 체력은 예전 같지 않았다. 금방 힘에 부치고, 자주 피곤했다. 하루에 네 타임씩 가르쳐도 끄덕없던 내가 두 타임만 수업해도 기진맥진하다. 50대에 접어든 탓도 있지만 수술 후유증도 큰 것 같다.
수술 이후엔 일보다도 내가 좋아하는 일들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 수영을 시작하고, 여행을 다니고, 책과 영화와 음악을 감상하고, 글을 쓰고, 혼자 있는 시간도 즐긴다. 퇴직하고 다시 재취업을 한 남편이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함께 여가를 보내는 시간도 늘었다. 두 아들들이 모두 이른 나이에 결혼한 덕분에 자유와 해방까지 누리고 있다.
지금은 나이듦이 두렵지 않다. 가끔은 중년이 되어 살도 찌고 머리도 히끗해진 나를 바라보는 것이 낯설기도 하지만, 마음의 여유가 생긴 지금 시간에 만족한다. 바쁘게 살아왔기에 누리고, 치열하게 살아왔기에 충분히 자격 있다고 스스로 격려한다.
앞으로 주어지는 시간은 더 나를 위해 투자할 것이다. 배우고 싶은 게 있다면 배우고,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갈 것이다. 건강을 주신 것에 감사하면서 맡겨진 사명도 다할 것이다. 격세지감을 느낄 나이에도 아직 꿈꾸게 하심이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