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왕과 사는 남자>ㅡ
아직도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가버린 어린 왕 단종의 슬픈 눈빛이 말이다. 왕위를 무력으로 찬탈한 수양숙부에 의해 죽고 싶지 않아 영월의 한 백성인 엄흥도에게 자신의 마지막을 부탁하며 어떤 심정으로 떠나갔을까.
증조 할아버지 태종, 할아버지 세종, 아버지 문종 등 선대왕들을 떠올렸을까. 자신 때문에 죽은 충신 사육신들과 아들처럼 돌봐준 금성대군을 떠올렸을까. 부인과 누이를 떠올렸을까. 영월 백성들과의 마지막 정을 떠올렸을까. 왕의 신분으로 청녕포 동강에 둥둥 떠다닌 채 제대로 된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단종의 마지막 모습이 너무 애잔해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조선시대 가장 비운의 왕으로 불리는 단종의 유배시기가 영화화 되었다. 병약한 문종이 일찍 승하하면서 김종서 장군에게 단종을 부탁한다. 수양은 때를 기다렸다가 김종서와 안평대군, 단종 측근들을 제거하는 계유정란을 일으켜 정권을 잡고, 이에 두려움을 느낀 단종은 수양에게 양위하고 상왕이 된다. 수양의 거사를 도운 이는 지략가 한명회였으며 그는 예종, 성종에게 자신의 두 딸을 혼인시켜 30년간 조선의 실세가 된 무서운 사람이었다.
집현전 학자들을 중심으로 단종복위운동을 계획하지만 실패하면서 이들은 대거 처형 된다. 겨우 살아남은 생육신들도 바람앞에 등불과도 같은 처지였다. 이 일로 단종은 영월 청녕포로 유배되고, 단종을 따른 6명의 궁녀들이 있었다는 기록을 토대로 영화에선 매화란 궁녀가 단종 곁을 끝까지 지킨다.
단종이 마지막을 함께 보낸 유배지의 마을 사람들과, 그 중심에 선 엄흥도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유배지로 지정되면 높은 신분을 가진 양반의 덕을 본다는 말에 마을 사람들은 들떠있었지만 조선의 선대왕이란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사실을 알고는 실망하면서도 점차 그의 슬픔과 고통에 공감하며 진정한 왕의 백성으로 거듭난다. 삶의 애환을 함께 하는 마을 사람들로 인해 조금씩 웃음을 되찾는 어린 단종, 구중궁궐에서 살얼음판을 걷듯이 살다가 마을 사람들의 진심어린 사랑을 받으면서 따뜻한 정과 푸근함을 느낀다. 여전히 단종을 조선의 임금으로 따르는 순박한 백성들이었다.
한명회는 금성대군의 유배지를 단종이 있는 곳 가까이에 두어 거사를 도모하길 기다린다. 단종을 제거할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금성대군이 중심이 된 복위운동이 또다시 실패하면서 금성대군도 죽고, 단종에게도 사약을 내려진다. 수양숙부에 의해 죽고 싶지 않은 단종의 마지막 결연을 엄흥도가 도와주며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17세로 별이 된 단종의 영화는 지금도 먹먹하다.
세조는 단종의 시신도 수습하지 못하게 하고 이를 어기면 3족을 멸한다고 엄명한다. 명령을 어기고 시신을 수습한 뒤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충신의 도리를 다한 사람도 엄흥도였다. 이후 가족들은 산속 깊이 도피생활로 이어지고 많은 고생을 했다고 전해진다. 단종의 무덤은 지금의 장릉이 되었다.
만약 단종복위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상왕으로 오래 살진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영화를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힘에 굴복한 어린 왕과 충신들이 아닌 역사를 바로잡으려 한 의로운 자들로, 반면 수양은 조카를 죽인 잔인한 자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억울한 죽음을 당했어도 어린 임금과 충신으로 남았지만 세조는 달랐다. 세조의 재위 기간은 겨우 11년 밖에 되지 않았다. 조카를 죽이고, 형제를 죽이고, 똑똑한 인재들을 죽인 결과는 피부병을 앓다가 죽어가고, 큰아들과 둘째 예종, 손자까지 단명하는 불운을 맞는다. 후대 사람들은 업보라고도 하고 인과응보라고도 말한다. 한명회 역시도 최고의 특권을 누렸지만 죽은 이후 연산군 때 부관참시란 굴욕과 수치를 당한다. 탐욕이 부른 화였다.
반면 엄흥도의 후손은 200년 뒤에 단종을 도운 일로 가문이 발전하고 그를 기리는 사당까지 지어졌다. 영월 엄씨의 장남이 문경에 자리를 잡고 500년간 집성촌을 이루면서 상의재를 건립했다고 한다. 영화에선 다루지 않았지만 단종의 부인인 정순왕후는 단종 유배 이후 노비로 강등 되었다가 82세까지 인고의 삶을 살다가 양주에 묻히고, 숙종 때 단종과 함께 복위되었다. 의가 좋았던 누이 경혜공주도 꽤 오래 살면서 동생의 죽음을 애닯아 했고, 단종복위운동 때 남편을 잃고 혼자 아들 정미수를 낳았지만 훌륭하게 키워내서 나중에 큰 지위를 얻었다고 한다.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충신들과 엄흥도까지 복권시켜 영월 장릉에 봉안했다고 하니 어떻게 살았느냐는 참 중요하다.
후대의 평가는 날카롭다. 세종대왕의 아들이었던 세조는 아버지의 명예까지 더럽힌 왕이 되었지만 안평, 금성대군의 행보는 달랐다. 선왕을 따르고 대의를 지키다가 결국 수양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세조는 마치 아버지가 아닌 권력 욕심이 많아 피의 군주가 된 할아버지 태종 이방원을 닮은 듯하다.
엄흥도의 신의는 충신 이상이었다. 3족을 멸한다는 명령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다. 단종의 마지막을 지켜준 마을 사람들과 궁녀 매화도 끝까지 신의를 지켰다. 누이이자, 어머니이자, 벗이었다며 단종이 쓴 마지막 편지를 읽고 단종이 떠나는 걸 눈물로 지켜보다가 낙화암에서 몸을 던진다. 목숨을 걸고 신의를 지킨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대의를 위한다고 해도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면 쉽게 신의를 저버리는데 이들은 달랐다. 찬탈로 왕위를 뺏긴 어린 왕의 진정한 백성들이었다.
흥행 질주에 단종의 유배지인 영월 청녕포를 찾는 사람들이 4배나 증가했고, 엄흥도 일가의 집성촌이 된 문경을 찾는 이들도 늘었다는 기사가 났을 만큼 관심이 커졌다. 영화도 천 만 관객을 향해 흥행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영월에선 단종별로 명명한 레굴루스 별이 있다. 어린앙자(레굴루스)별이 속해있는 사자자리는 단종의 생일과도 맞아 떨어져 단종별로 명명하고 해마다 단종 추모제를 연다. 이미 우리 마음속에 아름다운 별이 된 단종이 하늘에서 더이상 외롭고 두렵지 않는 별이 되어 밝게 빛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