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의 집

ㅡ<만약에 우리>ㅡ

by oj

순간순간 후회되는 것이 인생이다. 그때 만약 이랬다면 어땠을까? 되돌아보지 않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만약에 헤어지지 않았다면 그들은 끝까지 사랑을 지켰을까. 주인공 은호와 정원은 헤어졌지지만 그때 그들의 사랑은 찬란했고 진심이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말이 있다. 청춘은 불안전한 시기이다. 앞을 알 수 없고 미래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누군가의 삶까지 책임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은호와 정원이 그랬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풋풋했고,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애썼다. 가진 건 없지만 둘만 있어도 행복했던 순간이 조금씩 변한 건 꿈을 잃은 후부터였다. 아버지가 쓰러지시고, 휴학을 하고 선택한 일이 맞지 않고, 더이상 게임을 만들지 않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엄습하면서 불안한 청춘들이 서로에게 기대며 겨우 버티던 삶이 서서히 금이 간다. 누구의 탓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지쳐있는 그들은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은호는 더이상 웃지 않았고, 나란히 걷지 않았고, 선풍기를 돌려주지 않았고, 다친 손가락에 밴드를 붙여주지 않았다. 낡은 빨간 쇼파 하나에 앉아서도 서로 웃고 기대던 그들이 이젠 말이 없어졌다. 반지하로 이사가면서 들어올 수 없어 버려진 낡은 쇼파처럼 정원도 서서히 버려지는 것을 느낀다. 은호에게 정원은 말한다. 왜 화가 났냐고 말이다. 시비가 붙어 화풀이하는 은호의 빰을 때리면서 누군가 때리고 싶으면 자신을 때리라고 할 때 은호는 정원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났던 것 같다. 힘겨워하는 정원을 바라보는 것도, 행복을 줄 수 없는 것도, 그토록 원하던 자기 집을 갖게 해주는 것도 은호에겐 벅찬 일이다. 그걸 감당할 수 없어 버겁고 도망치고 싶었던 것 같다.


처음엔 창문의 빛을 모두 가지라고 말했는데 지금은 그 빛을 가려버린다. 은호를 힘들게 하는 이유가 자기 때문이란 사실은 정원을 한숨 쉬게 만들었다. 자신이 떠나면 은호는 다시 꿈을 찾고 일어설 수 있다고 믿었고, 정원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비오는 날 우산도 없이 집을 나간 정원을 쫒아가서 지하철에 서있는 모습을 보았지만 그는 한발짝 물러선다. 매번 붙잡던 정원을 이번엔 붙잡지 않았다. "만약 그때 지하철을 탔더라면 우린 어떻게 됐을까?"란 은호의 질문에 "아마 헤어지지 않았을 거야. 영원히."라고 답한다. 후회하는 그의 눈빛에서 곧 헤어졌을 거라고 다시 말하며 서로에게 잘한 일이라고 위로한다. 은호는 자신이 놓쳤다고 했지만 정원은 자신이 놓았다고 말한다.


둘의 타이밍이 맞지 않았을 뿐이다. 첫눈에 반하고, 사랑을 하면서도 고백하지 못해 가슴앓이를 하고, 질투를 하고, 결국 사랑을 이루었을 때 행복해 하던 젊고 아름다운 청춘들이지만 시기가 맞지 않았다. 그들의 사랑은 존재만으로 아름답고 행복했어도 생존이 달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사랑하는 이를 힘들게 한다는 자책감은 서로를 괴롭게 만든다. 그 상황에선 헤어짐을 선택했을 것이다. 반복된 실패와 무기력은 마음의 여유를 잃고 누군가를 지켜줄 힘을 앗아가버린다. 자기 하나 건사하기 힘들고 무기력해진 마음 상태는 두 사람의 행복을 밀어냈다.


그들은 헤어졌다. 충격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은호는 다시 도전했고, 정원이는 편입을 하며 건축사의 꿈을 키운다. 함께 있었다면 해내지 못했을 일을 헤어진 뒤에 이를 악물고 삶을 헤쳐나간 결과 둘에겐 가능성과 희망이 찾아왔다.


2026년 우연히 비행기에서 재회하는 장면은 흑백으로, 2008년 서로 사랑했던 그들의 과거는 밝게 표현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잘 대비시켰다. 그들은 과거의 풋풋했지만 암울했던 자신들의 사랑과 마주하며 담담히 그때를 회상하지만 은호가 한 아이의 아빠라는 사실을 받아드리기 힘들었는지 조용히 나간다. 함께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었던 두 사람은 이제 현실로 돌아온다. 마지막에 정원이 은호에게 그당시 자기 집이 되어주어 고마웠다고 말한다. 돌아갈 집이 없었던 정원에겐 은호 아버지의 집밥이나 은호가 내어준 집이야말로 고향 집과도 같은 곳이었다.


아쉬움으로 가득 찼던 젊은 날의 두 청춘이 해후하며 서로의 솔직한 마음을 다 털어놓고 각자의 길로 향해, 통창으로 가득 들어온 밝은 빛의 자기만의 집에 앉아 은호 아버지가 남기신 편지를 읽으며 과거의 은호와 은호 아버지에게 작별한다.


보육원에서 자라 갈 곳 없던 자신의 어둡던 과거, 그 암울한 시기에 편견없이 대해주며 밝은 빛과 따뜻함을 선사해준 두 사람은 정원이 기대던 집이었다. 그 집에서 사랑받고, 보살핌 받고, 꿈을 키웠기에 현재 자기만의 집을 가진 정원이 될 수 있었다. 집은 기대고 싶은 곳이다. 언제든 떠났다가 다시 돌아가고픈 그곳이 은호와 은호 아버지였다. 이젠 갈 수 없지만 그때의 온정을 기억하며 마음속 집으로 오랫동안 간직하겠지.

월요일 연재
이전 25화이대 나온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