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졸업 & 귀국

by oj


학기를 마치고 3월에 초등학교 졸업식을 했다. 엄마 아빠는 그 사이 두 번을 더 다녀가시고 무지 길고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2년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졸업식 날 고모와 고모부가 오셔서 흰 가운과 초록 학사모를 쓰고 강당에 서서 필리핀 애국가와 학교노래를 부르고 졸업장을 수여 받았다. 졸업식이 끝나고 졸업장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2년을 어떻게 버티나 걱정 했는데 졸업을 하니 내 자신이 너무 뿌듯했다.

한국은 중학교 학기가 시작되었고 난 한 달 늦은 4월에 입학을 한다. 한 달 모자란 일수는 필리핀 성적과 졸업장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이제 다음 주면 집으로 돌아간다. 많은 식구들이 축하해 주었다.

“민준아, 고생했어. 그 동안 힘들었을 텐데도 잘 참아줘서 고모가 고맙다.”

“민준이 졸업 축하한다.”

하시며 고모부가 꽃다발을 건네주셨다. 그동안 부모님처럼 세밀하게 돌봐주신 고모 고모부께 너무 감사했고 잘 가르쳐주신 선생님, 귀여워해준 형과 누나들 모두 잊지 못할 것 같다. 누구보다 잘 견뎌준 형준이에게 눈물 나게 고마웠다. 엄마 아빠 대신이라는 무거운 짐을 이제는 내려놓을 수 있어 마음이 가벼워졌다.

저녁 땐 송별 파티를 해준다고 해서 고마운 마음은 그 때 전하기로 했다. 졸업식이 끝나고 고급 식당에 가서 뷔페식으로 점심을 먹고 엄마 아빠 선물을 사러 가기로 했다. 곧 돌아가니까 지욱이랑 이모들 작은 선물도 사려고 아껴두었던 용돈을 모두 갖고 나왔다. 아빠께는 만년필을 엄마와 이모들에게는 똑같이 가죽 지갑을 사고 지욱이와 친구들 것도 하나씩 준비했다. 막상 갈 날이 다가오니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저녁 때 온가족이 거실에 모여 나와 형준이의 송별 파티를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파티 이후 처음이다. 카톨릭 국가여서 크리스마스는 가장 중요한 축제이자 명절이다. 긴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미사를 드리고 레촌, 비빙카 등 전통음식을 나눈다. 한국에선 추운 겨울에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하며 성탄절을 보내는데 더운 여름에 보내는 크리스마스는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적응이 안 됐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계절에 상관없이 아이들에겐 할로윈과 함께 최고의 날이다. 할로윈은 10월 31일이고 11월 1일은 우리나라 추석과 같은 만성절이다. 우린 할로윈만 보내고 추석은 우리나라 추석 날짜에 맞춰 고모가 한국식으로 음식을 차려주신다. 우리 한복과 같은 의상도 있는데 남자 의상인 바롱, 여자 의상인 바롯 사야라는 옷은 주로 결혼식이나 축제 때 입는다. 우리 전통놀이와 같은 구슬치기(졸렌), 공기놀이(잭스스톤), 사방치기(피코) 등도 있다. 여러모로 비슷한 나라여서 그런지 필리핀에서 2년 간 지낸 추억은 생각보다 좋았고 필리핀에서 보낸 시간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모두가 아쉬워해주고 잘 가라고 하며 한 번씩 안아주었다.


홈스테이 생활에만 누릴 수 있는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형들과 누나들과 주말마다 지프니를 타고 고모 몰래 오락실 다니던 일, 주말이면 시내에 가서 여기저기 누빈 일, 마닐라베이의 석양을 보던 일, 태풍 와서 정전 됐을 때 어른들이 안 계셔서 우리끼리 무서움에 떨면서도 이불속에서 더 무서운 얘기 하던 일, 등등. 특히 잊지 못한 에피소드로 가득하다.

그 중 가장 잊지 못할 에피소드는 어른들 안 계실 때 형들이 우리들 몰래 몰카 찍는 상황을 연출한 일이다. 창문을 열어놓고 도둑 들어온 것처럼 꾸며놓고는 밖에서 그림자가 비치면서 이상한 인기척이 난다고 형들이 맞서 싸운다고 밖으로 나갔다. 어렸던 우리들은 무서워서 형들을 나가지 못하게 다리를 붙잡으며 난리를 쳤는데 잠시 후 우당탕탕 소리가 들리자 우린 너무 무서워 울고불고 했다. 나중에 몰카란 사실을 알고는 용서 못 한다고 형들을 때리려고 달려들었더니 이리저리 도망치던 일은 지금도 두고두고 기억날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그 일은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개구진 형들..! 다들 고맙고 잘 지내요!’


고모와 고모부가 공항에 내려주시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고모는

“지욱이는 똑똑하고 의젓하니까 한국 가서도 잘 할 거야. 또 놀러와! 알았지?”

“네, 고모 고모부 감사했어요. 도착하면 전화 드리고 또 놀러 올게요.”

고모와 고모부와 사촌 누나. 형이 있었고 대식구 속에서 지내서 잘 적응할 수 있었고 색다른 문화 체험도 해보고 영어도 2년을 배우고 나니 훨씬 수월해졌다. 지금 돌이켜보니 좋은 기억들로만 채워졌닺

공항 안으로 들어와서 돌아갈 때도 필리핀은 방학이 시작되어 한국에 다니러 가는 대학생 누나를 따라 비행기에 탑승했다. 이제 진짜 돌아간다.

'2년 필리핀 생활은 나를 성장시킨 좋은 기회였고 앞으로 살면서 또 다른 도전의 자양분이 되겠지...진짜 수고했다. 수고했어. 잘 했다. 잘 했어!’

처음으로 나에게 잘 했다고 칭찬해주었다. 나보다도 두 살 어린 형준이가 잘 견뎌줘서 무엇보다 대견했다. 동생 손을 모처럼 꼭 잡아주자 날 쳐다보더니 활짝 웃었다. 집으로 가니 몹시 좋은 모양이다.


4시간 비행 후 도착해서 나오니 부모님이 마중 나와 계셨다. 얼마나 반가운지 이제 실감이 났다.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는 동생을 보니 귀엽고 저렇게 까불거리고 싶던 걸 참아냈다고 생각하니 대견했다.

“어서 와. 우리 아들들. 그 동안 고생했어. 얼른 집에 가자.”

하시며 안아주고 얼굴을 쓰다듬어 주셨다. 3월 꽃샘추위가 내겐 한겨울 추위 같았다. 엄마가 두툼한 봄 자켓을 갖고 나오셨다. 자켓을 입었는데도 공항 밖으로 빠져나와 주차장까지 잠깐 가는데도 간만에 느껴보는 쌀쌀한 날씨에 화들짝 놀랐다. 봄이 오려면 아직 멀었나 보다.

“왜 이렇게 추워요?”

“별로 안 추운데? 벌써 필리핀 날씨에 적응했나 보네 큰일이구나. 호호호. 금방 또 적응 될 거야.”

“한 계절만 있는 나라는 살기 편하긴 할 거야. 계절마다 옷도 살 필요도 없고 옷값도 안 들고 얼마나 편하겠어.”

“맞어요. 빨래도 수월하고요. 겨울 끝나면 드라이해서 넣어두는 게 얼마나 번거로운데요..”

하시며 엄마가 맞장구를 치셨다.

집에 도착하니 거실 창문에

“Welcome to home. l love my son”

이렇게 붙어있었고 풍선도 예쁘게 달아두셨다. 그 사이 이사를 하셨는데 내 방과 동생 방이 근사하게 꾸며져 있었다.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하는 안락함과 편안함은 우리 집 우리 부모님만이 줄 수 있다. 집에 돌아오니 푸근하고 편안하니 정말 좋다.

‘역시, 내 집이 최고다!’


잠시 뒤에 지욱이와 이모가 우리 집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왔다.

“우리 집 번호를 네가 어떻게 알아?”

“너희 집은 모르는 식구가 없는데. 공용이야. 몰랐어? 하하하.”

“아빠 비밀번호 당장 바꿔요! 안되겠어요. 하하하”

“민준이, 형준이 잘 왔어. 보고 싶었어. 많이 컸네!”

이모는 손에 내가 좋아하는 초코 케이크가 들려있었다. 해물탕에 잡채, 불고기, 갈비까지 한상 푸짐하게 차려져 있는 음식들을 실컷 먹고 이모가 사온 케이크도 잘라 먹었다. 며칠 쉬다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러 가기로 했다. 그 사이 두 분은 시골로 이사를 가시고 두 분이 살던 집은 이모네 가족이 그대로 살게 되면서 지욱이 방도 생겼다. 이모부는 재취업을 하시고 연봉도 꽤 높아서 내가 떠나기 전보다 모든 것이 안정을 되찾았다. 이모와 지욱이 사이도 예전보다 부드러워졌다. 날카롭게 쏘아대던 이모 말투도 다정해졌고 지욱이도 이제 편안해 보여 다행이었다. 이모네 가족만 보면 조금은 불안 불안했는데 이제 제자리를 찾은 듯 했다. 지욱이도 전보다 자신감이 넘쳐보였다. 필리핀에 다녀온 뒤로 영어를 더 열심히 해서 레벨도 올라가고 자존감도 높아지고 세희랑도 사귀게 되어 벌서 100일이 됐다고 했다.

“자식, 벌써 여친도 생기고 나없는 사이에 많이 컸다.”

예전의 지욱이였다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엄마 아빠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해 웅크리고 있다가 한 번씩 으르렁거리며 자기 방어를 하는 상처 입은 작은 강아지였다면 지금은 위풍당당한 진돗개나 풍산개 같아 보였다.

이모가

“내일은 중학교 교복 맞추고 다음 주부터 학교 가야지. 지욱이 교복 입은 모습 아직 못 봤지? 얼마나 멋있고 잘 어울리는데. 이제 민준이까지 같이 다니면 둘 다 키 크고 멋있고 잘 생겨서 여학생들이 줄줄 따르겠는 걸. 호호호.”

“이모 눈에만 잘 생겼지. 우리가 뭐가 잘 생겨?”

“니들이 안 잘 생기면 누가 잘 생긴 거야?”

3월에 학기가 마쳐서 여기 중학교에 한 달 늦게 입학을 하게 됐다. 졸업장과 성적표, 증빙 서류를 준비해서 엄마가 확인한 바로는 학사 일정에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형준이는 5학년 나는 중1이다. 이제 여기에서 보내는 중학교 생활도 기대 된다.

엄마 아빠께 선물을 드렸더니 무척 기뻐하셨다. 이모에게도 선물 드리니

“이모 것도 샀어? 고맙네. 가죽 지갑 예쁘다.”

“엄마 거랑 똑같은 걸로 샀어요. 두 이모들께는 이모가 꼭 전해주세요.”

“알았어. 지욱이랑 놀아.”


지욱이랑 방에 들어가서 그동안 쌓여있던 얘기들을 나누고 간만에 둘이 같이 게임도 같이 하니 한국에 와 있다는 것이 실감나고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형준이는 우리와 자꾸 끼어 놀고 싶어 했지만 아마도 이젠 찬밥 신세일 거다. 예전엔 내가 너그럽게 모는 걸 다 받아쥤지만 이제 어림도 없다. 형준이도 부모님 믿고 나한테 까불카불거릴 게 뻔하다. 그래도 예전보단 동생이랑 더 가까워졌고 2년 동안 아빠몫을 대신한 그 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이제 그런 부담감에도 벗어나니 한결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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