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할아버지 유품

by oj


나와 형은 엄마 말씀을 듣고는 놀라면서

“아니요. 할아버지가 일기 쓰셨어요?”

“응. 엄마도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알았어. 유품 정리하면서 읽었는데 오래 전부터 일기를 쓰셨나봐. 너무 잘 쓰셔서 엄마도 깜짝 놀랐어. 너희도 읽어보라고.”

“엄마가 갖고 있어요?”

“아니. 삼촌이 갖고 있겠다고 했는데 다시 보고 싶어 잠깐 달라고 했어. 전쟁 당시의 일을 회상해서 쓴 일기가 너무 생생해서 그걸 어떻게 기억하셨나 싶어.”

“그 때 할아버지 나이가 어떻게 되는데요?”

“너랑 똑같아. 4학년 때였어.”

“근데 그 때를 기억한다구요?”

“그래. 필체 좋으신 건 알았는데 필력도 너무 좋으시네. 어릴 때인데도 어쩜 기 억력이 그렇게도 좋으신지 너무 생생해서 너무 놀랍더라.”

“저도 읽어 볼래요!”

요즘 게임에만 관심 있고 책은 별로 안 좋아하는 형은 큰 관심이 없는 듯 했지만 학교에서만 배운 전쟁 이야기와 피난 이야기에 따로 읽은 6.25 전쟁이 어떻게 써져 있을지 난 너무 궁금했다. 집에 가면 당장 읽어봐야겠다.

집으로 와서 먼저 숙제하기 바빴다. 하루 종일 할머니 댁에 있어 숙제가 밀렸다. 학교 숙제와 학원 숙제까지 해야 되고 씻고 자려면 오늘 일기를 읽긴 틀렸다. 내일이나 주말에 읽어보기로 하고 잠을 청했다. 할아버지 기일이어서 그런지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뒤척거리다 잠이 들었다.


다음 날 학원이 없는 날이라 일찍 집에 온 나는 엄마한테 할아버지 일기장을 달라고 했다. 누런 편지지 묶음에 할아버지의 병상 일기. 암투병기가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후회와 회한과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연세가 드시고 무료해지면서 일기를 쓰신 것 같았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연세는 76세셨는데 10년 전쯤부터 쓰신 일기였다.

넘기다 보니 6.25 전쟁 당시의 일을 기억해 쓰신 일기를 읽을 수 있었다. 너무 궁금해 마음이 급해졌다. 할아버지 일기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경기도 일산에서 나는 4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고 1948년에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채 남과 북 따로 정부가 세워지면서 1950년에 북한은 새벽에 기습 남침을 하면서 6.25 전쟁이 발발했다. 내 나이 11살 때였다. 나는 일산 국민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아버지는 중면사무소에서 면 직원으로 일하고 계셨다. 당시 아버지는 중요한 서류만을 챙기시고 직원들과 같이 먼저 피난을 하셨다.

남은 가족들은 미처 피난하지 못하고 인민공화국 깃발 아래 마을은 북한 인민군이 차지하게 되었다.

포격이 시작 된지 나흘 만에 인민군이 내려오면서 할머니를 위시하여 수색 상골이라는 동네(향동리)로 잠시 피신을 하였다. 뒷동산에서 따발총 쏘는 소리가 들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젖개 고개(매화동 고개) 에서 적기로부터 기총 사격을 받아 소나무 숲에 숨어 있기도 했다. 집으로 귀가하며 지내던 중 저녁 때만 되면 주둔하고 있는 인민군이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동네 사람을 다 나오라고 집합을 시켰다. 멍석에 앉혀놓고 소위 김일성 노래를 가르치곤 하였다. 그 때 우리 작은 할아버님 집에 본부를 차려놓고 방에다가 침대를 놓고 지휘관이라는 사람은 잠을 자고 병사들이 대부분 활동을 하고 있었다. 주로 저녁 활동을 많이 하였다.

우리 할머니는 매일 식사를 맡아 하셨는데 가마니에 담아놓은 흑설탕이 마루에 잔뜩 있었다. 밥을 지어주면 설탕에다 밥을 비벼먹었다. 밥을 지을 때 할머니는 일부러 밥을 태우셨다. 그것을 누룽지로 만들어 손자들에게 주시기 위해서였다. 밥은 큰 그릇에 퍼놓으시고 누룽지는 긁어 놓았다가 꽁꽁 뭉쳐 주시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인민군한테 들켜 어머니 동무 밥을 왜 그렇게 태우냐며 핀잔을 듣기도 하셨다.

작은 할머니와 작은 할아버지께서는 동생 집으로 피신하였다. 그 때 작은 아버님은 집에 계시면서 땅을 파놓고 독을 묻은 다음 독 속에서 숨어 지내셨다. 군대에 끌려갈까봐 숨어 지낸 건데 독 위에다 짚단으로 위장을 하셨지만 답답하다며 도저히 못 있겠다고 하시면서 자주 집으로 오셨다.

그 때마다 할머님께서는 놀라 까무라치셨다. 그렇지 않아도 동네에 사는 좌파들이 인민군한테 작은 아버지는 집에 있다고 자주 일러바쳐 불안한 터였다. 할머니는 고함을 지르면서 우리 자식은 객지에 나가 죽었는지 살았는 지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아냐고 고함을 치며 멱살을 잡고 너 죽고 나 죽자며 달려드셨다. 정말 대단하신 용기였다.

그러다가 작은 아버님께서 답답하다고 밖으로 나오셨다가 결국 인민군한테 들켜 끌려가셨다. 온 집안은 슬픔에 잠겼다. 할머님께서는 식음을 전폐하시고 사방으로 수소문한 결과 구파발 학교에 수용돼 있다고 소식을 듣고는 함지박에 식사를 준비하여 나르셨다. 아침 일찍 이고 가시면 오후 4~5시에나 오셨다. 오시면 함지박을 땅에 팽개치시고 목을 놓아 통곡을 하셨다. 그러면 온 집안은 또 슬픔에 잠겼다. 그 때 당시 식구들은 할머님, 어머님, 작은 어머님, 큰 누님, 형, 나, 여동생, 사촌 남동생 이렇게 8식구가 있었다. 작은 할아버님과 작은 할머님은 자주 들락날락하셔서 별로 기억에 없다. 누님이 15살, 형이 13살, 내가 11살, 여동생이 8살, 사촌 동생이 5살이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전쟁을 겪고 증조 할아버지만 피난을 떠나시고 남은 가족의 생활을 생생하게 써놓으신 일기였다. 진짜 신기했다. 동화에서나 읽고 다큐나 영화로만 보던 인민군들이 눈앞에서 있었다니 얼마나 두려우셨을까.


"하루는 할머님께서 구파발에 다녀오셔서 또 통곡을 하시는 것이었다. 식구들이 의아해하며 물었더니 작은 아버님께서 탈주를 하셨다는 것이다. 할머님께서는 작은 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믿으신 것이다. 그렇게 슬픔에 잠겨있을 때 작은 아버님께서 집으로 오셨다. 온가족이 기뻐했다.

작은 아버님은 집에 온 즉시 또 독 속으로 들어가셨다. 작은 아버님께서는 그곳에 수용되어 있다가 북쪽 어딘가에 가서 훈련을 받은 즉시 전선에 투입된다는 것이었다. 전쟁에 끌려가실 뻔 했는데 용케도 도망을 나오셨다. 그 곳은 의용군에 자원 입대한 사람과 끌려온 사람으로 꽉 차 있다고 했다. 집에서 숨어 지내시다가 9.28 서울 수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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