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라 '마의 태자' 는 천 년의 신라가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갈 때 나라의 존폐 위기에서 신라의 재건을 꿈꾼 마지막 왕자 이야기이다.
신라는 여러모로 작지만 강한 나라였다. 강대국 고구려를 제치고 삼국을 통일한 업적을 이루고 천 년의 역사를 이어갔다. 골품제란 특별한 신분제도. 이로 인해 유일하게 여왕이 가능했던 나라. 신라만의 고유한 화랑도 제도. 만장일치제인 화백 회의. 천 년의 다양한 문화재가 있는 특별한 나라였다.
선덕 여왕의 조카이자 태종 무열왕은 김유신과 함께 삼국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고 그 뒤를 이은 문무왕 때 삼국 통일의 대업을 이룬다. 이렇게 강했던 신라는 하반기부터 권력 다툼으로 혼란해진다. 귀족들의 지나친 사치로 과도한 세금을 부과해 백성들이 노비로 전락하고 몸을 피해 도적이 되고 호족들의 세력까지 커지면서 후삼국으로 분열되었다. 궁예는 후고구려를 견훤은 후백제를 세워 영토는 다시 분열되고 서라벌의 일부만 초라하게 지키고 있던 신라는 더 이상 희망이 없는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신세였다.
삼국 통일은 여러 면에서 필요한 일이었다. 작은 한반도에 세워진 세 나라는 끊임없이 영토 확장과 한강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으로 600년이 넘게 국력을 낭비하고 소중한 인명 피해를 입었다. 통일이 된 뒤로는 인구도 증가하고 경제적인 발전을 이루며 한민족으로 융화되면서 그 뒤로 이어진 한민족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깊은 뿌리가 되었다.
신라는 화랑도 정신으로 뭉쳐 백제 계백 장군이 이끄는 오천 결사대와 맞서 싸워 승리하며 백제를 멸망시킨 위대한 업적을 이룬 나라였다.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고구려와 손을 잡고 백제를 치기 원했지만 거절하자 당나라와의 외교에 성공해 당과 손잡고 거대한 고구려까지 멸망시킨 나라였다. 반쪽 통일이라는 아쉬움도
있지만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낸 나라이고 통일 직후에는 태평성국을 이루고 천년의 역사를 빛나게 했다.
다만 고구려 일부를 당에게 빼앗긴 아쉬움은 당의 노예와 인질로 잡혀간 고구려 유민들이 30년 후에 당나라를 탈출해 대조영을 중심으로 발해를 건국해 고구려의 뿌리를 지켜냈다. 나라를 지키려는 염원은 시간이 지나도 강하게 이어진다.
이렇게 막강했던 통일 신라가 후삼국으로 분열된 후 멸망의 기로에 선 마지막 왕은 56대 경순왕이었다. 신라 태자의 동생 선은 형을 무척이나 따랐다. 형과 가까이 지내고 대화를 나누기 위해 처소까지 월지궁으로 옮기며 형이 가르쳐주는 지식들을 스승님들께 배우는 것보다 더 좋아했다. 선이 태자에 대한 마음은 존경에 가까웠다. 태자의 꿈은 화랑을 다시 부흥시켜 화려했던 신라를 재건하는 일이었다. 그 꿈을 위해 몰래 군사를 훈련 시키느라 밤마다 성을 빠져나가는 태자는 빛나는 영웅이다.
늘 비장한 각오를 하는 태자의 눈빛을 바라보는 선은 어린 마음에 형의 꿈을 동경하며 지지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달랐다. 후백제 견훤이 신라에 쳐들어와서 선왕을 죽이고 자신을 왕으로 세운 끔찍한 경험과 수치를 겪으면서 나라를 지킬 힘과 군사력과 그나마 남은 의지마저 모두 잃었다.
이미 국력이 쇠퇴해졌어도 경순왕은 너무 허무하게 나라를 버렸다. 희망이 없더라도 최소한 한 번이라도 태자처럼 싸워볼 생각을 왜 하지 못했을까.
후고구려의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한 뒤 후백제마저 물리치자 위협을 느낀 경순왕은 싸워보지도 않고 왕건에게 항복 친서를 보낸다. 결국 태자에게 군대를 해산 시키라는 명령을 내리자 태자의 꿈은 좌절 되었다. 순복하고 싶지 않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천 년의 신라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때 태자의 마음이 어땠을지 짐작이 됐다.
태자에겐 김춘추. 김유신. 관창. 사다함과 같은 화랑들의 용기와 전쟁에선 후퇴하지 않는다는 임전무퇴 정신으로 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화랑도 정신을 계승해 전쟁까지 불사하며 찬란한 신라의 부흥을 다시 꿈꾸었는데 신라가 무너지면서 얼마나 회한과 상실감으로 허탈했을까.
고려 왕 왕건은 신라 왕족과 귀족들의 안위와 신분을 보장하는 온건 정치를 실시하며 신라와 후백제. 발해 유민까지 다 받아들였지만 태자는 그 호의를 뿌리치고 자신을 따르는 무리와 금강산에 들어간다. 나라를 잃고 좋은 옷. 맛있는 음식이 무슨 소용이냐며 삼베옷을 입고 나물만 먹고 지냈다고 전해져 '마의 태자' 로 불리던 마지막 왕자는 쓰러져 가는 신라에 대한 애정과 충성을 끝까지 지켰다.
고려 왕건은 왕족들은 받아드려도 신라의 궁궐 월지궁은 허물어뜨려 신라의 역사를 잊게 만들었다. 태자가 떠난 뒤 많은 시간이 흘러 동생 선은 폐허가 된 월지궁에 찾아온다. 스님이 된 모습으로 달못에서 형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마지막 장면은 애처롭다.
고려에서 몸은 편하고 화려함을 누리면서 살았어도 선 역시도 나라를 잃은 한과 형이 꿈꾸었던 신라의 재건에 대한 꿈을 잊지 못한 것이다. 결국 보장된 안락함을 포기하고 스님이 되어 떠돌다가 형과 함께 하며 가장 행복했던 달못에 찾아와 형과 신라를 그리워하는 선도 태자와 다르지 않은 동생이다.
나라를 뺏긴다는 것은 나라를 잃은 설움과 슬픔과 고통을 안겨준다. 일제 강점기 때 나라를 되찾기 위해 3.1운동을 일으키고 독립군들과 애국지사들의 목숨을 건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에 민족성은 지켜지고 해방될 수 있었다. 나라를 지키려는 민족의 염원은 목숨까지도 버리게 만든다. 그렇게 세워진 나라는 국민들을 지켜내고 뿌리가 이어지고 나라를 발전시켰다. 국민들에겐 위태로울 때 나라를 지키기 위해 똘똘 뭉치게 만든 힘은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에서 나온다.
천년의 역사를 가진 통일 신라를 잃고 싶지 않은 태자의 나라 사랑과 나라를 잃으면서 쓸쓸히 산속으로 들어간 태자를 생각하면 이후의 기록은 없지만 신라를 사랑한 그 강인한 정신만은 오롯이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