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국밥

ㅡ아버지의 고된 어깨ㅡ

by oj


<아버지의 국밥> 이란 책에는 주인공 어린 두수가 어른이 되어 아버지의 제삿상에 아버지가 좋아하던 국밥을 올린 이유가 소개된다.


한국 전쟁은 우리 민족의 역사 중 빼놓을 수 없는 비극적 역사이다. 겨우 일제에 해방된 기쁨도 잠시. 5년만에 벌어진 한민족 간의 전쟁은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다.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을 잃었고 고향을 빼앗겼고 희망을 꺾었고 극심한 가난을 겪었으며 분단 조국을 만들었다. 휴전 이후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북관계는 악화일로이고 여전히 긴장 중이다. 중동에 전쟁 기운이 감도는 것처럼 우리도 한시도 방심할 수 없다.


한 가족의 피난기와 가난한 삶을 보여주며 전쟁의 어려움을 생생히 보여주는 이 책은 12살 두수네 가족의 피난길로 시작된다. 어머니가 임신과 출산으로 진주 외갓댁에 할머니와 두수. 동생 소영이만 먼저 외갓집으로 뒤늦게 피난을 떠나야 했다. 피난을 가면서 폭격에 죽은 사람들을 보고 놀라 동생 소영이는 자다가도 몇 번씩 비명을 지르며 울었다. 어린 아이들이 겪기엔 너무 힘들고 험난한 여정이었을 것이다.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를 참으며 피난 행렬에 끼여 소영이의 눈을 감고 걷게 한다. 강을 건널 때 얇게 얼어있는 강을 건너려는 사람들과 돌아가더라도 안전하게 가려는 사람들이 나뉜다. 안전한 쪽을 택해 걷고 있을 때 강을 건너다가 얼음이 깨져 사람들과 수레가 물에 빠지는 걸 보았을 땐 얼마나 두려웠을까. 힘들어 하는 동생을 업고 두수와 할머니는 칡뿌리를 씹으며 걷고 시레기죽을 먹고 외양간에서 잠을 자며 겨우 기차를 탔다.


곧 굉음을 울리며 전투기가 날아오고 꼬리에 폭탄을 맞은 전투기가 기차 옆을 부딪힐듯 날아오자 기차가 멈춘다. 놀라서 기차에서 뛰어내린 사람들이 달려갔지만 전투기가 땅으로 떨어지면서 많은 사람이 죽고 두수와 소영이가 겨우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가슴을 쓸어내렸다. 기차에 남아있던 할머니와 헤어진 두수는 동생과 볏단 속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틀을 걸어 제법 큰 동네에 도착했다. 살아남기 위해선 어린 아이도 강해질 수밖에 없다. 두수가 그랬다.


그 곳에서 만난 꿀꿀이 아줌마는 미군 부대에서 남은 음식을 모아 죽을 끓여 장사하는 분이셨다. 두수가 먹은 죽은 꿀꿀이죽이 아닌 꿀죽이었다. 아주머니는 두 아이를 잠시 돌보면서 두수는 뗄감을 구해주고 소영이는 피난길에 죽은 딸을 대신해 키우고 싶어하는데 아줌마의 그 마음도 이해가 됐다.


마을에서 만난 대찬이 형은 군인이었다가 잡혀 인민군이 된 뒤 탈영해 몸을 피해 다니면서 미군 옷을 세탁해주는 일을 했다.

두수가 대찬이형의 일을 도우던 중에 한 여성이 성폭행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대찬이 형은 그 미군을 찾아내 복수를 하고 미군 옷을 불태우고 도주한 용감하고 의리 있는 청년이다.


어려운 상황과 처지를 이용해 약자를 괴롭히는 비열하고 비인간적인 사람들. 당시 우리 민족의 자화상이며 힘이 약한 민족이 겪은 수모였다.


소영이가 홍역과 영양실조로 홍역을 앓자 정성껏 간호한 뒤에 아줌마가 딸로 삼으려고 해서 몸이 회복한 뒤에 감사하다는 편지를 써놓고 밤중에 도망을 나왔다.


어린 소영이의 마음에는 힘들고 지쳐 가족보단 지금의 안락이 더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소영이를 설득하며 어르고 달래고 빰까지 때려가며 겨우 진주에 도착한 두수는 강인한 오빠였다.


외갓댁에 도착해 가족을 다시 만났을 때 두수는 감격스러웠을 것이다. 자칫 이산가족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재회한 가족은 다시 살아가기 위해 할머니는 재봉일을 하시고 두수는 구두닦이를 하며 생계를 돕는다. 하지만 할머니의 재봉틀을 누군가 훔쳐가서 잃어버리고 훔쳐간 아저씨를 시장에서 만나 사정했지만 오히려 구타 당한다. 나중에 서울로 가는 길에 청년들에게 험하게 끌려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용서할 땐 인과응보라고 생각하지 않고 긍휼의 마음이었다. 모두가 어려운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두수는 가족을 위해 노동하면서 힘들게 사시는 아버지를 보며 가슴 먹먹해 한다. 함께 식당에 가서 자신에겐 국밥을 사주시고 아버지가 매일 두부 한 모로 끼니를 떼운다는 사실을 알고 아버지를 위해 국밥을 사드리려고 하자 식당 아주머님이 그냥 국밥을 주셨다. 맛있게 드시는 아버지를 보며 두수는 눈물을 뚝뚝 흘린다. 나중에 어른이 되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두수는 아버지의 제삿상에 국밥을 올리게 된다.


국밥 한 그릇 먹기 힘들 정도로 전쟁으로 인한 가난은 온 민족이 겪은 수난이었다. 특히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아버지의 어깨는 더 무거웠으리라. 보릿고개. 꿀꿀이죽 등도 가난을 겪으면서 나온 말들이며 우린 그 때의 고통을 잊어서는 안 된다. 타산지석으로 삼아 지금의 풍족함이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제사 문화가 여전히 남아있다. 형식은 변했지만 그 의미는 변하지 않는다. 관혼상제의 하나로 제례는 자식된 도리를 다한다고 여겼다. 기제. 차례. 시제가 있고 기제는 예전엔 4대. 지금은 2대 조상에게 드릴 만큼 간소화 되었다.


제삿상에 올린 국밥은 그리움과 감사. 존경의 상징이다. 두수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전쟁과 가난을 이겨낸 우리 민족의 역경이 국밥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keyword
이전 09화마지막 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