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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맺기 위해선

by oj

3년을 텃밭 가꿀 때 남편은 밭농사가 체질에 맞는 것처럼 농작물을 잘 길렀다. 옥수수, 참외, 방울 토마토, 가지, 고추, 호박, 쌈채소까지 수확도 제법 거두어서 이 집 저 집 나눔을 하니 뿌듯했다. 올해 같은 무더위였으면 작은 텃밭이라도 다니기 힘들고 타들어가는 농작물에 한숨 꽤나 쉬었을 것 같다.


퇴사한 뒤 다음 해 봄부터 텃밭을 가꾸면서 농사일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았다. 겨우 두 고랑 5평인데도 힘들다는 투정은 농부들께 마냥 죄송한 일이다. 조그만 땅이라도 있으면 그냥 두지 못하고 뭐라도 심고 가꾸는 농촌 생활은 쉽지 않다. 해야 하는 일이니 이 더위에도 밭에 나가지 않을 수 없을 테지만 부지런하지 않으면 못할 것 같다.


작년부턴 아쉬운지 남편은 베란다에 긴 프라스틱 통 두 개를 갖다놓고는 한 곳엔 겨자채와 상추를 심었다. 자연 햇빛이 아니라서 그런지 물을 연신 줘도 자라는 것이 더뎠다. 상추는 비교적 잘 자라서 금방 땄지만 너무 연하고 힘이 없었다. 한 번 따니 더 이상 자라지도 않아 흙으로 덮어버렸다.


겨자채는 달랐다. 시간이 오래 걸려 자라긴 했어도 한 번 자라서 따도 파릇한 겨자채가 연신 자랐다. 고기 먹을 때 상추와 싸서 같이 먹으니 겨자향이 나는 게 일품이었다. 오랫동안 자라다가 시들시들해졌지만 집에서 키운 것 치고는 꽤 유용한 결과물이었다. 장마철에 파가 비쌀 땐 파 뿌리도 심어 잘라서 먹었더니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었다.


올해는 작은 화분 두 개에 고추 모종을 심고 한 화분에는 방울 토마토를 심었다. 한 지인 분이 두 가지 농작물은 베란다에서도 잘 자란다는 말을 들었지만 자라지 못했다. 꽃은 피었는데도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자꾸 떨어졌다.


어머님네 아파트가 1층이라 고추 모종 두 개를 베란다 창 밖에 있는 선반에 갖다 두었다. 잘 못 자랄 거란 기대를 깨고 드디어 고추가 달렸다. 화분 두 개 모두 주렁주렁 달리자 어머님도 우리도 자식 키우는 심정으로 신통하게 바라봤다. 왜 안 따시냐는 말에

"빨갛게 되면 얼마나 예쁘겠니. 그냥 보기만 해도 이쁘구나."

하셨다. 성격이 급한 난

"그러다 죽으면 아깝잖아요."

했지만 몇 주 지나서 빨갛게 변한 고추를 볼 수 있었다. 일이 있어서 남편 혼자 어머님 댁에 갔다가 사진을 찍어서 보냈다. 너무 예뻤다. 역시 자연 바람과 햇빛, 빗물을 인위적인 것이 따라가지 못한다.


우리 집에 남겨둔 방울 토마토 모종은 매일 물을 준 덕에 죽진 않았지만 꽃을 피어도 떨어지기만 하고 영 토마토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 키만 삐죽하게 커서 베란다 꼭대기에 닿을 판이다. 남편이 열심히 공을 들이긴 해도 아무래도 땅에 심어줘야만 열매를 맺을 듯하다.


열매를 맺기 위해선 정성을 들여야 한다. 물을 주고 들여다보고 밭에선 잡초도 뽑아주고 비료도 주고 가지 치기도 해줘야 한다. 그리고 맺은 결실을 보면 흐뭇하다. 흙은 뭐든 심어만 두면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 하물며 인간은 열매를 맺진 못하더도 헛되게 살아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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