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층간소음으로 인한 갈등 사례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폭행은 기본이고 살인까지 이어지는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최근에도 이사온 뒤 윗층에 사는 여성 BJ들의 인터넷 방송으로 새벽까지 춤추면서 시끄럽게 해 잠을 잘 수 없다며 사건반장에 제보를 해준 영상이 올라왔다. 너무 시끄러워 살 수 없다는 이웃에게 사과는 커녕 선을 넘었다고 말하고, 단독 주택으로 이사 가면 되지 않냐며 적반하장이었다고 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뉴스에 제보되고 기사화된 이상 그냥 넘어가진 않을 듯했는데 나름 방음 장치를 설치해서 폭죽 소리가 그렇게 큰줄 몰랐다며 사과를 하고 이사하기로 했다고 전해졌다.
이웃간엔 정도란 것이 있다. 층간소음을 이해하는 정도와 이해하지 못하는 정도가 있는 것이다. 나도 아이들이 어릴 때 층간소음으로 힘들다며 매일 인터폰을 울려대는 할아버지 때문에 곤욕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우리 아이들은 비교적 순한 편이었다. 세 살 터울이고 유치원생, 초등 2학년인 두 아들은 뛰면서 놀기보다는 레고나 장난감, 목욕탕에서 물놀이를 좋아했다. 잠도 일찍 자는 편이고 매트도 깔아놓았지만 아랫층 할아버지께선 아이들이 걸어다니는 소리만 들려도 예민하게 반응하셨다.
처음엔 죄송한 마음에 진심으로 사과했다. 하지만 거의 매일 인터폰이 울리고 어느 날은 거칠게 올라오신 할아버지께
"그럼 아이들 발을 묶어놓아야 하냐"고
"너무 하신 거 아니냐"며 나도 못 참고 냅다 소리를 질러버렸다. 당장 이사갈 수도 없는데 언제까지 당해야 하나 너무 화가 났다.
남편이 오자 씩씩대는 내 얘기를 듣고는 주말에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남편은 술 회사에 근무하고 있어 술 한 박스와 과일을 사들고 가서는 할아버지께 죄송하다며 인사를 드렸다. 몇 개월만 있으면 분양받은 집으로 이사 가니 그때까지만 참고 이해해달라고 정중히 말씀드렸다.
그날 이후부턴 인터폰이 울리지 않았다. 역시 사람은 관계로 풀어야 한다. 상황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이고 사람의 진심이 전해져야 한다. 또 설득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화를 냈고 남편은 지혜롭게 행동했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것은 사나운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살이라고 언급한 어느 작가님의 말이 떠올랐다.
남편의 그 작은 행동이 할아버지의 마음을 누그려뜨렸고 큰 영향을 받으신 것이다.
그 뒤로 이사가기 전까지 층간 소음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어쩌다 마주칠 때면 아이들과 정중히 인사를 드렸더니 반갑게 인사까지 받아주셨다.
그때의 기억으로 우리 윗층이 2년간 아들 며느리가 손주 둘과 갑자기 합가해 살게 되면서 쿵쾅거리고 시끄러워도 아이들이니 그럴 수 있다고 너그럽게 이해했다. 우리 부부는 한번도 싫은 내색을 안 했다. 만날 때면 늘 미안하다고 하는 가족들에게 난 괜찮다며 마음껏 놀게 두라고 말했다.
아들이 주말에 와서 늦잠이라고 잘 때면 저렇게 시끄러운데 어떻게 참냐고 하길래
"니들도 저렇게 컸어!"
하며 두둔했다. 분가할 때 아드님은 선물을 주면서 감사하다고 전했고, 나이대가 비슷한 윗층과는 식사도 함께 하는 가까운 사이가 됐다. 아마도 역지사지의 마음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