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상담
첫번째 상담 후, 그 사실이 나를 규정짓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싶었으나 실패하고, 되려 더 우울한 일주일을 보냈다. 친구들이 전화도 해주고 찾아와 주기도 하면서 감정이 해소되는 부분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결국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것이었고, 스스로는 한발자국도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절망감이 자주 몰려왔다.
첫번째 상담을 받고 3일정도는 울면서 일어났다. 물에 불어난 미역 같은 상태로 출근하고 돌아오고, 출근하고 또 집에 돌아오는 쳇바퀴 같은 일상을 보냈다. 온 몸에 힘이 없어서 약국에서 휘적거리며 걸어 다니니 직원들이 알아보고 운동 좀 하라는 잔소리를 했다. 티 내고 싶지 않았는데 온 몸으로 티 내고 다니는 꼴이었다. 아마 상담을 받고, 내 현 상태를 인정하면서 가면을 쓰기조차 포기했던 것 같다.
그래도 4월에 입사했던 초기에는 밝았다며 그 모습이 사라졌다는 얘기를 들으니, 나의 인생의 밝음은 만31세 4월에 소진된 것인가하는 우울한 생각이 다시 올라왔다. 이제는 가면 쓸 힘도 없는데, 어쩌지.. 나 사회생활은 어떻게든 유지해왔는데 이제 진짜 어떡하지.. 라는 걱정도 올라왔다.
약국에서 어떠한 질책을 받든, 그게 옳았건, 옳지 않았건 간에 나에겐 더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빨리 그 상황만 넘어가고 싶었다. 내 감정은 이미 우울과 불안에 소진된 이후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애를 쓰며 일주일이 지났다. 기민하게 다른 사람의 반응을 살피며 응해주던 나는 사라지고, 날것의 내 모습을 최소한으로 그러나 최선을 다해 숨기던 그 일주일은 그렇게 지나갔다.
두번째 상담을 갔다. 선생님을 신뢰해도 되는지에 대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으나 내 마음이 너무 답답하니까 응어리를 풀어놓을 생각으로 갔다.
선생님은 나를 굉장히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다시 와준다면 꼭 하고싶은 말이 있었다고 하셨다. 일주일동안 걱정이 되어 연락이라도 하고 싶다고 하셨다. 그만큼 내 상태가 심각해보이셨나보다. 이전 상담에서 내가 그린 크고 울창한 여름나무를 꺼내시며, ‘썸머씨는 결국 이렇게 크고 울창한 여름나무가 될 것이에요. 여기 이 옹이 보이시죠? 옹이도 아주 크게 뚜렷하게 그리셨네요.’ ‘나무가 필연적으로 크고 든든하게 되기 위해서는 옹이를 지녀야해요. 옹이는 상처를 뜻해요.’ ‘썸머씨의 상처는 옹이가 되어 성장의 자양분이 될 거에요.'
‘현재 갖고 있는 기질 자체가 상처인데, 상처 없는 성장은 없어요. 이 기질썸머씨의 자양분이라 생각해줘요. 이 상담의 가이드라인은 알려줘야 하지 않겠어요? 이 나무가 썸머씨의 궁극적인 모습이에요.’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20대초반,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던 하나의 기도제목이 생각났다. 그 기도를 했던 이유는 단 하나, 나의 부족한 모습과 상대방에게 상처주는 내가 너무 싫어서였다. 그래서 하나님께 극단적인 기도를 했다. ‘하나님, 저 아무리 아프고 상채기가 나도 상관없어요. 어떤 방법으로든 저를 성장시켜주세요. 그래서 이 혼란스러운 감정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그 정도로 하지 않으면 나는 변화를 할 가능성이 없다고 믿었나보다. 근데 이런 식이라니, 나는 상황을 주실 줄 알았는데 나 자신이 문제일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것도 10년이 지나서 깨달을 줄은..
극단적인 기도에 대한 극단적인 기도응답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선생님의 말에 감사함이 올라오면서 방어기제가 조금 더 풀어졌다. 한때는 성장에 목매었지만 너무 힘들어 성장이 지긋지긋해진 나는, 이제는 살기위해 어쩔 수 없이 성장해야함을 확인 받은 날인 것이다.
‘보통의 무던한 사람들은 썸머씨의 반대기질을 가지고 있어요.’ ‘무던한 사람은 위험회피, 자극추구가 모두 낮게 나오고 사회적 민감성은 중간 정도에요. 그리고 자율성도 어느정도 있고요.’ ’근데 표가 보여주는 것처럼 썸머씨는 모든 것이 극단적으로 반대이지요? 그럼 마음이 지옥일 수밖에 없어요. 항상 혼란스럽거든요.’
맞다. 여러 심리채널을 보면서 내가 나의 증상을 우울, 불안, 조울 등으로 간단하게 정의 내릴 수가 없었던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뭐랄까 비슷하면서 달랐다. 우울, 불안의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러가지 감정이 마구 뒤섞여 혼란스러운 것이었다. 평온한 날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멀게 느껴진다.
의존도가 특히 높게 나온 것은 사람들의 평가로 나를 본다는 뜻이라고도 하셨다. 이 나이가 되도록 자아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이유를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보단, 사람들이 멋있게 여겨주는 것들을 선택하며 살았다. 인정욕구가 높기 때문이다. 내가 무던한 기질이라면 그것이 그렇게 힘들게 없었을 텐데, 그러기엔 나는 하고싶은 것을 해야하는 자극추구형 인간이라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뭔지 (선택하고 실패한 경험이 많지 않기에) 아직도 모르지만 말이다.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삶이었다.
‘썸머씨, 근데 아까 말한 무던한 사람들이 사실은 가장 약한 사람이라는 것 아세요? 무던한 사람은 옹이가 없어요. 옹이가 없으면 나무가 커질까요? 그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힘을 잃어요. 하지만 옹이가 있는 사람은 달라요. 오히려 더욱 커지고 썸머씨 같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까지 가질 수 있죠.’
이 말들이 참 꿀처럼 달콤했다. 근데 그 과정이 너무 쓰릴 것도 알았다. 불편하고 힘든 감정들을 겪어내고 겪어내야 그 지점에 도달할 수 있을 테니.
선생님은 나에게 두가지 솔루션을 주셨다. 첫번째는 우울과 불안을 카페트처럼 깔고 가라는 것이었다. 자기수용의 영역인 것이다. 내가 나로서 괜찮아지는 것. 수용하는 것. 다시 우울과 불안이 밀려올 때 그래 그럴 수 있어. 인정하고 스스로를 다그치지 말자. 라고 생각하는 것.
두번째는 현존하는 것이다. 과거를 반추하지도 말고, 미래를 걱정하는 것도 아닌 현존하는 것. 나는 진심으로 자신 없어 하며 말했다. ‘저는 평생을 과거나 미래에 살았는데요?’ ‘그럼 오감에 집중하는 것부터 시작해봐요. 퇴근길에 바람을 느끼고, 발의 감각을 느껴요. 수박을 먹을 땐 넷플릭스를 끄고 맛에만 집중해봐요. '
나로서는 너무 어려운 두가지 숙제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며 걸었다 ㅋㅋ ㅜㅜ 노력할 힘조차 없었나보다. 그래도 나의 궁극적 모습, 여름나무가 같이 떠올라 마냥 우울하진 않았다.
목요일의 상담을 마치고 다시 일주일을 살고 있다. 여전히 무력감과 우울감, 불안감이 올라온다. 사람들의 반가운 인사와 다가옴이 부담스럽고 도망치고 싶은데 또 외롭다. 교회에서의 리더의 역할을 할 때는 내 과거 가면을 다시 꺼내 들어 억지로 노력하고 집에 와서 다시 탈진했다. 가족들에겐 여전히 까칠하고 예민하고 감정조절이 안된다. 여럿에게 내 상태를 직간접적으로 꺼내 보였지만 내가 변화했다는 의미는 아니기에 여전히 절망적인 기분이 든다.
친구가 또 소개팅에서 도망갈거냐고 도발하는 바람에 엉겁결에 잡아버렸지만, 내 마음 밭이 엉망이라 상대방의 고운 마음을 받아들일 상태가 아니다. 내가 가장 불편해하는 것이 이성관계다보니, 심성이 착하다는 그 사람에게 이미 상처줄 것 같은 마음에 벌써 미안할 뿐이다.
이렇게 변화가 미미한 일주일이 또 성실히 지나간다. 그렇게 내가 또 한낱 나약한 인간이란 걸 깨닫는 한주다. 내 옹이가 점점 더 잘 보인다.
참 역설적이다. 지금도 좋아하는 그 사람을 불안해서 비난했던 내가 되려 자기객관화가 안된 상태였다니. 여전히 그와 친구가 되고 싶다. 이제는 정말 비난을 하지 않을 용기가 생겼기 때문이고, 용기를 주고 믿음을 줄 기회를 다시 되찾고 싶기 때문이다. 사람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은, 상대방을 사랑한다는 것은, 내 옹이를 품고 나무가 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