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와 죄책감 그 사이 어딘가

[엄마로운 하루 ② - 모유를 먹이려고 했습니다만]

by 홈런

결국 난 계획한 만큼 모유수유를 하지 못했다.


임신을 확인했을 때부터 당연히 나는 모유수유를 할 줄만 알았다. 역시나 행동보다 쉬운 건 말이었다. 출산을 하고 본격적인 육아를 시작하면서 나의 결심은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시작은 병원에서부터다. 수술을 하고 입원을 한 지 2~3일 차 되던 날 밤 가슴 통증이 시작되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젖몸살이란 건가. 아릿한 통증에 깊은 잠을 자지 못했고 얼음찜질과 마사지를 받으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모유 수유에 대한 의지가 강했었기에 수유콜이 오면 곧장 달려가 직접 물려 보기도 했다.


하지만 젖몸살이 점점 심해지고 겪어보지 못한 감정의 널뛰기를 경험하면서 갑자기 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솟구쳤다. 그렇게 조리원에 들어가서 조금씩 수유콜을 받지 않게 됐고 완전 모유수유를 꿈꾸던 나는 혼합수유의 길로 들어섰다.


모유의 양도 풍부하고 아이도 잘 먹어 모유 수유를 아주 잘할 것 같다는 조리원 오케타니 선생님의 칭찬 아닌 칭찬이 귓가에 맴돌았다. 어찌 됐든 아이에게 나름대로 모유를 줄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을 찾았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스멀스멀 고개를 드는 죄책감을 애써 잠재웠다.


조리원에서 하루 4번 유축을 하고 모자동실 시간에만 가끔 모유를 먹이며 나름의 계획을 행동으로 옮기는 듯했다. 그러나 조리원 퇴소 후 집에서 현실 육아를 시작하면서 나의 계획은 또 다른 국면으로 들어선다.


오롯이 나와 남편이 해내는 생애 첫 육아는 쉽지 않았다. 밤에는 1~2시간 간격으로 깨면서 충분한 잠을 자지 못했고 낮에도 배앓이로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를 보며 마음을 졸였다. 그래도 꾸역꾸역 직수와 유축을 번갈아가며 혼합수유를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피로는 쌓여가고 정신적으로도 지쳐갔다. 너무 행복한데도 알 수 없는 우울감이 나를 지배했고 타이니 모빌 음악이 구슬프게 들리는 지경까지 가게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피부 발진까지 심해지면서 수유 중이라는 이유로 참았던 피부과 약을 먹게 됐다.


피부과 약을 잠시 복용하게 되면서 모유 수유도 잠깐 휴지기를 가졌다. 잠깐의 휴식은 생각보다 달콤했다. 나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점점 게을러졌다. 그러다 점점 모유를 간식처럼 잠깐씩 먹이게 됐고 두 달 정도가 지나면서 이제는 아예 모유를 먹이는 날이 손에 꼽게 됐다.


모유를 먹이겠다는 계획은 두 달여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다행스럽게도 그 누구도 내게 모유를 먹이라는 강요를 하지는 않았지만, 알게 모르게 모유를 먹여야 한다는 압박감이 잠재돼 있었나 보다.


사실 나는 단유를 진행 중인 지금까지도 가끔씩 죄책감에 사로잡히곤 한다. 어디서 시작된 건지 모를 무거운 마음에 아이에게 종종 미안한 마음이 든다.


모든 것이 처음 해보는 것들 투성이라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정말 하나도 모르겠는 요즘이다. 나는 언제쯤 이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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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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