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운 하루 ④ - 육아 간섭 말고 소통을]
아이를 낳고 확연하게 변한 것은 양가와의 만남이 더 활발해졌다는 사실이다. 누군가 내 아이를 아끼고 보살펴 주는 것은 감사해야 할 일이다.
친정 엄마와 시어머님은 육아에 있어 나보다 훨씬 베테랑이시다. 그만큼 경험도 많고 아는 정보도 많으실 터였다. 처음 부모가 되어 보는 내 어설픈 행동은 어르신들의 끊임없는 조언으로 이어졌다. 육아 초보인 내게 어른들의 도움은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도움과 조언은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정도의 역할을 할 때 빛을 발한다. 상대방의 신념과 가치관에까지 침범하면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아이들의 기질과 성격도 다양하기 때문에 어른들의 조언이 내 아이에게 모두 통하는 것도 아니었다.
막역한 사이인 친정 엄마와도 육아관을 사이에 두고 여러 번 다툰 적이 많았다. 친정 엄마는 어찌 됐든 나를 자식으로서 무조건적으로 아끼는 마음이 있기에 다툼 이후로는 최대한 나의 가치관을 존중해 주시려고 노력하셨다. 문제는 시어머님과의 관계였다.
이렇게 말하면 시어머님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가질 수도 있는데 그건 아니다. 어머님은 그동안 며느리의 입장을 많이 이해하고 배려해 주셔서 큰 갈등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낳고 내가 느끼는 감정이 더욱 낯설다.
물론, 육아에 있어 서로 다른 생각들을 친정 엄마에게 한 것처럼 명확하게 말하지 못한 내 탓도 있다. 하지만 시어머님과의 관계가 친정 엄마처럼 편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친정 엄마에게 하듯이 시어머님에게도 막역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내겐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에둘러서 내 의사를 표현했지만 닿지 않았다.
어머님은 조리원을 퇴소해 집에 온 이후부터, 친정 엄마가 오시는 주를 제외하고는 매주 우리 집에 오신다. 처음에는 그 관심과 도움이 감사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부담스러워졌다.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라 주말이라도 푹 마음놓고 쉬고 싶었다. 어머님께서 건네주시는 말씀에 괜히 상처받는 나날들도 많아졌다.
시작은 쭉쭉이와 스마트폰 영상이었다. 100일도 안 된 아이에게 자꾸만 쭉쭉이를 하려 하시고, 스마트폰 영상을 보여주시는 걸 우연찮게 보게 됐다. 그 장면을 보자 갑자기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자제해달라고 강하게 말하는 게 부담스러워 남편이 대신 말했지만, ‘괜찮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불편한 상황이 몇 차례 연출됐다.
아이의 수유량, 수면 등에 대한 부분에서도 비슷한 시기 육아를 하던 새언니의 사례를 언급하시곤 해 괜히 민망해졌다.
도화선이 된 사건은 아이의 100일 때였다. 낮잠을 자고 난 아이의 얼굴에 빨간 발진이 몇 개 올라왔었다. 아이를 매일 보던 나는 손톱으로 긁어서 올라온 발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매번 그랬기 때문이다. 발진을 확인하려 손을 뻗는 순간, 어머님이 손을 탁 치시며 ‘어디 물린 거라 만지면 간지럽다 ‘고 하시며 나를 제지하셨다.
순간 서러워졌다. 아이를 매일 보는 건 난데, 도대체 왜 내가 하는 말은 다 신뢰하시지 않으시는 걸까. 아이의 100일 기념사진을 찍을 때 입힐 옷도 직접 입혀보고 싶었는데 집에 오시면 아이를 하루 종일 안고 계셔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남편은 항상 내 의견을 명확하게 전달하라고 말한다.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남편에게 고맙지만 이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건 내게 난제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내 의사를 전달하기도 하는데 왜 같은 일이 여러 번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어머님께 나도 부모라는 사실을 인정받고 싶다. 돌이켜보면 잘하고 있다는 칭찬을 받은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우리 딸, 이제 다 컸네~ 아이 잘 키우네~’라는 친정 엄마의 말이 떠오를 때면 괜히 코끝이 찡해진다. 육아에 허덕이는 나의 푸념일 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