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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육도씨 Sep 01. 2020

영화 감상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양파 베이글, 아메리카노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이미 여러 번 봐서 내용을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로지 한 장면, 한 대사를 위해 또다시 영화를 볼 때가 있다.
 예를 들어 가끔은 스스로 동기 부여하기 위해 영화를 보기도 하는데, 금발이 너무해( 주인공이 하버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 마녀 배달부 키키(화가인 친구가 그림 그리다 슬럼프에 빠지게 되면 어떻게 하는지 말하는 장면)
그리고 이번의 주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직장 선배이자 동료인 천사 같은 나이젤이 주인공 안드레아에게 냉정하게 하는 말 “넌 열심히 하지 않았어” 이 말은 나의 정곡을 찌르는 말이기도 했다.
대학을 다닐 때까지만 해도 정해진 과제가 있었고 교수님이 평가를 해주셨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오니 이제는 모두 혼자 알아서 해야 한다. 혼자 작업을 하면 작업물에 대해 뭐라 하는 사람도 없고 이건 이렇게 하는 게 더 좋다 피드백을 주는 사람도 없다. 그러다 보니 금방 늘어지고 손을 놓게 되어버리곤 하는데 이렇게라도 스스로 채찍질을 해야 한다.
또, 영화의 주인공들이 열심히 하는 장면을 보면 약간 대리만족도 되고 의욕이 살아난다. 그리고 영화가 재밌으니까.

내용은 짧게 기자 지망생이던 안드레아가 유명 패션잡지 런웨이의 편집장 미란다의 두 번째 비서로 일하게 되면서 성장하는 내용.

예전의 취업준비의 후유증인지 보통 회사에 이력서, 자기소개서를 쓰기 전에 회사에 대해 알아보고 쓰지 않나? 미란다가 패션계에 큰 영향을 끼칠 정도인데 이름도 모른다고? 자기소개서를 기똥차게 잘 썼나 보다. 괜히 기자 지망생이 아니네 하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쨌든 안드레아는 미란다의 비서직 면접을 보게 된다. 안드레아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미란다는 나가라고 한다. 안드레아는 떠나기 전 솔직하게 자신의 할 말을 하는데, 미란다는 그 패기를 높게 샀는지 안드레아를 비서로 채용한다.
 갓 취업한 신입사원에게 회사는 혹독하기만 했다. 원래도 패션에 대해 잘 모르는데 시키는 일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도 어렵다. (영화 상에 자주 언급되는 드 마셸리에는 패트릭 드마셸리에로 세계적인 패션 포토그래퍼. 이 영화 때문에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다. 편집장인 미란다가 시키는 업무는 많기도 많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안드레아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는가? 초과수당은 받고 일하나? 노동청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야? ) 개중에는 말도 안 되는 일들도 있다. 토네이도가 발생했는데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연락이 온다. 안드레아는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을 시켜놓고 완수 못했다고 실망했다는 미란다의 말을 듣는다. 입사 첫날 도움을 줬던 나이젤을 찾아가 서러움을 토로했지만, 나이젤은 냉정하게 넌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징징대기만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런웨이에서 일하는 게 자신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말해준다.
 사실 안드레아도 처음엔 직장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하듯 본인도  직장을 멸시했다.
하지만 안드레아가 멸시하는 그 직장이 누군가에겐 희망이었던 직업이고 희망을 주는 일이기도 했다. 그 장면을 보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얼마나 열심히 했을까? 애사심과는 별개로 내 일을 얼마나 사랑했을까?

 그렇게 나이젤의 도움을 받은 이후로 안드레아는 점점 변화하고 일에 적응해 미란다의 신뢰를 얻는다.
보통 다른 영화 같으면 주인공이 승승장구함에 따라 오만해지고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변한 주인공에 실망해서 멀어지고, 주인공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온다는 설정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는 다르다. 안드레아가 미란다의 신뢰를 얻고 옷도 잘 입게 되었다고 해서 주변 인물을 무시했느냐 하면 답은 아니다. 안드레아는 그저 원래 자신의 분야가 아니었던 일에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던 것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 친구나 오랜 친구들은 그에 대한 응원은커녕 안드레아에게서 비싼 선물을 받아놓곤 돌
어 미란다에게서 온 전화를 받지 못하게 훼방을 놓거나 한다. 또 나중에 다른 남자가 일방적으로 안드레아에게 치근덕 댔을 때도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니고 친구의 오해일 뿐이었다. 물론 바쁘다 보면 인간관계는 소원해지기 마련이지만 안드레아가 성장하고 노력하는 모습은 눈에 보이지 않았던 걸까? 이제야 조금 일에 익숙해지나 했는데 그런 사람을 위해 관둬야 할 바엔 그냥 헤어지는 게 나을 듯하다.

일과 사랑. 사랑과 일. 나는 너무나 확고하게 고를 수 있다. 사랑보다는 일이다.

사람은 날 배신할 수 있어도 돈과 경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그런데 아무리 패션계에 영향을 끼치는 미란다 또한 두 마리 토끼를 잡기는 어려웠나 보다.
 미란다에 대한 서사는 많이 나오지 않는다. 그 자리에 올라가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몇 번의 이혼을 하고 현 남편과도 불화가 있었던 것과 그 또한 애지중지 하는 쌍둥이의 엄마라는 것. 세간은 미란다를 일 중독자, 얼음 여왕 등의 별명을 붙여가며 떠들어댄다. 그때 처음 안드레아는 미란다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일에서 성공한 여자들에게는 왜 그런 타이틀이 붙을까? 독하다던가, 마녀, 철의 여인이라던가. 철의 남자는 아이언맨 말고는 들어본 적도 없다. 사극만 봐도 그렇다. 어떻게 보면 정치에 의해 희생당한 마리 앙트와네트나 장희빈도, 중국의 유일한 여자 황제였던 무측천 또한 정치가로서는 유능했어도 여자가 권력을 거머쥐면 요녀, 요부로 치부되기도 했다. 주로 가부장제, 남성의 시각에 의한 기록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재해석으로 드라마나 영화 소재로 많이 쓰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런 순간에서도 미란다는 다시 일하는 때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나중에 안드레아는 미란다를 보며 인해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다른 직장을 구하지만 그것은 사랑 때문이 아닌 본인이 추구하는 것에 대한 결정이었다. 미란다는 그렇게 자신 같은 길을 선택하지 않는 데에 실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소를 지으며 미란다 식의 극찬을 보낸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아무것도 진행이 되지 않는다. ‘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바보야’ 하면서 자기 연민에 빠지는 건 이제 그만하고, 일단은 생각을 비우고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마음을 다 잡고 차근차근 시작하기로 했다.

미국 도시에서 바쁘게 일하는 기분을 내기 위해 이번 영화 푸드는 양파 베이글과 아메리카노. 저번 리틀 포레스트를 보고 감자 빵을 만든 이후로 빵 만드는 데 재미를 붙여 이번에도 양파 베이글을 직접 만들었는데, 만들고 보니 다른 베이글로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이젤과 첫 만남에서 나이젤은 누가 양파 베이글을 먹었냐며 얼굴을 찡그렸었다. 이미 반죽에 양파 가루를 넣은 뒤였다. 양파 베이글이 얼마나 맛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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