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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육도씨 Feb 22. 2020

심술

2020.02.21

집에서 수개월에 걸쳐 키우고 있는 토마토 2개가 다 익어서 먹기로 했다.

간단하게 모짜렐라 치즈와 함께 카프레제를 해 먹었다.

모짜렐라 치즈는 대형 마트에서 파는 물에 담긴 모차렐라를 사용해야 한다.

왜냐하면 일반 피자치즈용으로 나오는 것보다 식감이 훨씬 좋기 때문이다. 나는 치즈의 그 폭신폭신한 식감을 사랑한다.


 안주는 간단하게 만들었으니 그에 어울릴 만한 가벼운 술을 마시기로 했다.

심술. 말장난을 하고 싶지만 재미있는 게 생각이 안 나 넘어가기로 한다.

패키지가 귀여워서 무심코 집어 들기는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과실주가 아닌 약주였다.

컵에 따르면 주스 같은 맛이 날 것을 기대할 색감이지만, 마셔보면 생각보다는 덜 달고 드라이한 맛도 조금 난다.

대신 새콤한 토마토를 하나 집어 먹고 한 모금 마시면 단맛이 확 올라온다.


토마토를 심은 건 작년 여름. 해가 지나 한 겨울에 열매를 맺고 겨울 끝자락에 열매가 다 익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한 순간에 사라져 버리는지. 그래도 나름 뿌듯하다.

농약도 없이 좁은 화분에 자라서 토마토가 열리기는 할지 싶었는데, 대견하게도 작지만 토마토가 몇 개나 열렸다.

식물을 키우다 보면 죽을 둥 말둥 하면서도 계속 새 순을 내는 걸 보면 잘 키워주지 못해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론 너도 이렇게 어떻게든 살려고 하는구나 하고 용기를 얻는다.



토마토에게
너는 여름에 심어져 해가 지나 우여곡절 끝에 열매를 맺어 빨갛게 익었구나.
농약 없이도 훌륭하게 자라 그냥 토마토보다는 작지만 방울토마토보다는 크게 자라주었다.
 토마토야 비록 한 화분에 여섯 그루가 옹기종기 모여 열악한 환경일지라도 이렇게 잘 자라주어 나의 피와 살이 되는구나.
너의 새콤함은 모차렐라 치즈와도 잘 어울려 나에게 좋은 안주가 되었다.
 토마토야 너는 거의 반년에 거쳐 자라왔거늘 사라지는 건 한순간이로구나.
너의 수고와 맛을 잊지 않고 열심히 마시고 또 마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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