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으로 도피하는 기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평소엔 맛보지 못하는 개방감에 취해있었다. 시선만으로, 존재만으로 답답함을 넘어 숨통을 죄어대는 타인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니 물속 깊은 곳에 가라앉아있다가 뭍으로 끌어올려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잠깐의 자유도 도피를 통해 얻은 것인 이상 한계가 명확했다.
현실과 게임을 오갈 때마다 매번 찾아오는 허탈함과 자괴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만 갔다. 현실의 모습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한심하기 그지없어서, 바뀔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도망치기나 바쁜 자신의 모습이 끔찍하게 하찮아서 견딜 수 없었다. 그 감정이 쌓이고 괴로움이 불어나 견디기 맨 정신으론 견디기 힘든 지경이 될 때쯤, 두 번 다신 오지 않을 계기가 생겨 그동안 쌓인 울분과 설움을 연료 삼아 운동을 시작했다. 이번 기회마저 놓쳐버린다면 정말 영영 바꿀 수 없을 것만 같아서, 혹은 이번 기회마저 놓쳐버리면 지금까지의 도태되어 가는 흐름이 더욱 가속되어 결국 내가 제어하지 못하게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어서.
평소 일상적인 일로 밖에 나가는 것조차 타인의 시선이 의식되어 피해 다닐 정도였으니 당연히 대낮에 땀 뻘뻘 흘리며 추하게 뛰어다니면서 이목을 끌 엄두는 나지 않았다. 한밤중, 퇴근하는 길인 사람들마저 모두 사라졌을 고요한 밤에서나 나는 집 밖을 나섰고, 혹여나 창 밖을 내다보거나 바람을 쐬러 나온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눈에조차 띄지 않도록 지하주차장에 가서 매일같이 운동을 했다.
지금 내 상태로는 어떤 운동을 어떻게, 얼마나 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지식도, 정보도 없으니 막연하게 인터넷에 검색하는 일부터 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모두가 좋다고 하는 줄넘기를 했고, 그때 내 시선에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절로 떠오르는 몸을 가진 사람이 매일 줄넘기 1,000개를 하는 것부터 시작을 했다기에 나도 막연하게 따라 했다.
운동은커녕 밖에 잘 돌아다니지도 않던 몸이라 줄을 넘으려 뛸 때마다 끔찍하게 괴로웠다. 발목과 무릎의 관절이 감당하기 힘든 체중에 짓눌려 금방 시큰거리고 줄을 돌리는 손아귀와 어깨에도 힘이 빠져나갔으며, 무엇보다 폐와 목구멍이 말라붙고, 바깥공기에 얼어붙어 금세 깨져버리던 터져버릴 것 같았다. 도저히 버틸 수 없어 뛰는 걸 멈추고 고개를 숙여 숨을 고를 때마다 다시 뛸 의지를 만들어 준 건 푹 숙인 시야에 들어오는 저주 하고픈 몸뚱이였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나는 다시 이를 악물고 뛰었고, 한계에 부딪칠 때마다 어금니를 악물고 한번 더, 두 번 더, 조금씩 더 버텨나갔다.
그때의 경험이 자연스럽게 어떤 감정회로를 구조화시켰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지하고 수치심을 느끼며, 수치심을 느낀 부분에서 이미 완성되거나 완성에 가까운 사람들을 찾아 그들의 방식을 모방했다. 변화를 위해끝이 없어 보이는 노력의 과정에서 필요한 의지는 수치심과 자괴감, 질투심 등 부정적인 감정들을 치환시켜 공급했다. 이 과정은 운동처럼 자신을 변화시키는 과정이 금방 눈에 띄어서 성취감을 재깍재깍 얻지 못하는 일, 그래서 오랫동안 지속하기가 어려운 일들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지극히 일부분만이 조금 나아졌다고 만족하고 합리화하며 끝내버리거나 하는 노력에 비해 빨리 변화하지 않는다고 지쳐 포기하려 할 때마다 부끄러운 부분을 되새기고, 그 부분을 떼어내지 못하고 또다시 포기하려는 자신의 행동에 다시 분노하며 몸을 움직였다. 이 감정회로는 지금의 내겐 의식적으로 이용할 정도로 삶의 유용한 도구로 자리 잡아있다. 운동을 가야 하는 때에 귀찮음과 근육통에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다시 끔찍했던 과거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은 거냐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경제적 여유를 만들기 위해 투자를 공부하고, 매일 아침마다 경제 뉴스를 훑어보는 일이 번거로워질 때마다 더 나아가지 못하고 한평생 고작 지금의 모습으로 살고 싶은 것인지 자신에게 물었다. 마치 이미 이상적인 모습을 이뤄낸 내가 현재의 나의 곁에 붙어서 항상 다그치고 좋은 길로 이끄는 듯한 모습으로 존재했다.
이런 가르침은 더 많은 사람들의 장점들과 단점들을 보고, '나는 이런 면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라고 되물을 때마다 계속해서 늘어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계속해서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나며 다양한 이야기와 모습들을 보고 배운다. 때로는 신경 써야 하거나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힘들지 않나 묻는 사람들도 있고, 스스로도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지만 조금만 생각을 해 보면 내가 부끄럽게 여기는 면이 많은 만큼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방향이 많고, 자신의 한계치 또한 끊임없이 늘어나고 있다는 게 체감이 되어 오히려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마치 과거에 게임에서 이미 높은 위치에 오른 이들을 보며,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어 여러 방법들을 배우고, 찾아가며 캐릭터를 성장시키던 모습이 이제는 현실의 내 모습을 게임 속 캐릭터처럼 여기며 성장시키는 형태가 되었다.
어김없이 게임을 떠올리고 게임처럼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보며 역시 사람 근본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한 말이 맞긴 한가보다 싶으면서도 용케 평생 게임만 할 뻔한 특질을 지금의 모습까지 이끌어 온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