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일말의 고민도 없이 초~중학교 학창시절이라고 답할 것이다. 보통 그때는 삶에 대한 큰 고민 없이 숙제와 학교 공부만 잘 따라가고 소소한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하기만 바빴기에 다들 '그 시절이 가장 좋았지' 라며 되뇔 테지만 나는 평탄한 유년기의 조건들을 어느 정도 만족시켰음에도 전혀 그렇지 못했다. 그때는 내가 스스로를 가장 수치스러워했을 때니까.
부모님의 앨범과 나의 핸드폰 앨범 어디에도 그 시절 나의 사진은 어금니를 악물고 찍은 졸업사진 이외엔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피사체로 찍힌 사진 자체를 찾기가 어렵다. 수치심이 덩어리 지기 시작한 그때부터 카메라에 초라한 내 모습이 기억과 함께 이미지로 박제되는 것이 두려웠다. 항상 귓가에 '너는 왜 X 하냐.', '너는 X가 나아져야 할 텐데'라는 말들이 항상 맴돌았고 그 말들은 머릿속에도 박혀 어떤 행동과 어떤 생각을 하던 매 순간마다 피부를 파고든 바늘처럼 통증을 일으켜 'X를 해결하지 않은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결함이 있는 존재이며 그렇기에 하등 하다'를 암묵적으로 표현했다. 나는 중요한 순간마다 자신이 주변의 타인들보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평균치보다 떨어지는 저급품이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자각했다. 망설이고, 숨어들었으며, 고작 그렇게밖에 행동할 수 없는 나를 더욱 거칠게 깎아내렸다. 여느 패배자들의 중얼거림처럼 '그때 조금 더 잘할걸', '그때 그렇게 하지 말걸', '그전에 미리 준비를 더 할걸' 따위의 변명이 밤마다 머리와 폐부를 짓눌렀고 그 탓에 14살 즈음부터 최소 새벽 1시, 늦으면 새벽 4시에나 겨우 잠드는 수면장애가 생겨났다.
근데 그토록 찢어발기고 싶은 기억의 일부이지만 나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한 게, 특별해지기 시작한 게 언제냐 묻는다면 그 또한 똑같은 시절이라 답할 것이다.
타인들의 아무 생각 없이 내던지는 돌멩이 같은 말에서 시작된 수치심이었다. 그것들이 계속해서, 똑같은 곳에 날아들길 반복하자 그건 똑같은 서랍 모서리에 수십 번을 찍혀 피멍이 드는 순간 같은 스트레스가 되었고 '나는 왜 이거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나?'라는 자기혐오로 번져나갔다. 사소한 실수도 조금만 생각하고 행동했으면 그런 결과를 피할 수 있었는데 왜 그걸 미리 인지하고 막을 수 없었나 후회했고 그런 결과로 끌고 간 자신을 질타했다. 내게 수치심을 주던 사람들은 어쨌거나 타인이니 항상 곁에 머물 수 없으니 물리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 존재했지만 스스로가 자신을 부정하기 시작하니 공격받는 데엔 거리와 시간 같은 물리적인 걸림돌이 전혀 없었고 덕분에 의식과 무의식의 순간 모두 완벽하게 고통스러울 수 있었다.
그렇다. 완벽한 고통의 나날이었다. 극도로 의기소침해져 남들 앞에 나서는 일은 당연히 불가능해졌고 인간관계에 있어, 새로움을 경험함에 있어 첫 시도를 하기조차도 '나 따위가 그런 걸 했다간 또 평생 고통받을 흑역사나 늘어날 게 뻔하다.'라는 반사반응이 일어나 망설이다 포기하는 일이 잦아지고 모든 일에서 시작의 문턱은 점점 더 높아져만 갔다. 그러다 보니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어 하던 일들은 하나 둘 접어버리고, 몇 안 남은 즐거움의 흔적은 방구석에서 나 자신을 숨기고서도 홀로 즐길 수 있는 RPG게임뿐이었으며 '나'가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장소도 오직 나를 한없이 숨길 수 있는 그곳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