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욕심부리지 말라'는 말을 한다. 그리스도교에서 7대 죄악으로 규정되는 '탐욕'이기도 한 이 욕심 탓에 무너지고, 망가지는 많은 사람들을 보며 건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회적 시각으로도 이 욕심으로 인해 도둑질부터 강도, 살인, 수많은 전쟁까지도 이어져 많은 목숨들이 스러졌으니 필히 '과한 욕심'은 인간 전체의 삶을 위해서라도 피해야 함이 옳다. 하지만 욕심 자체가 송두리째 도려내진 삶 또한 밝지 않다. 자신의 꿈을 꽃피워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 또한 어찌 보면 욕심의 범주 안에 들어가니 이 욕심이 없다면 인간의 삶을 바꾼 위인들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삶에 자족하는 삶이나 살았을지 모르니 지금과 같은 문명의 발전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욕심은 '매슬로의 욕구 5단계'의 최상층에 있는 자아실현의 욕구까지 닿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욕심이 있어야만 인간은 꿈을 꿀 수 있고, 야망을 원동력으로 품고 나아갈 수 있다. 인간의 삶에 대한 진리를 찾겠다는 욕심을 품은 철학자들, 여태까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혁신적인 것을 만들어 내겠다는 발명가, 자신의 예술세계를 각자의 수단으로 표현해 내겠다는 예술가들과 현대에 이르러서는 막대한 돈을 벌거나 혹은 인간의 삶을 바꾸겠다는 원대한 사명을 가진 위대한 사업가들과 같은 이들이 그와 같은 이들이다.
내겐 형용할 수 없는 욕심이 있음을 항상 느낀다. 그 욕심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힐 때면 또다시 덩치를 불리길 반복한다. 집, 차, 돈, 친구, 연인, 육체, 정신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들을 원한다. 종류도 계속 늘어나고, 노력하는 만큼 안목도 높아져 점점 더 말도 안 되는 것에 가까워지는 욕심들 탓에 현재의 환경에, 소유한 것들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것을 바라며 불만을 갖게 된다. 허나 환경과 자신에 대한 불만이 이제는 날 짓누르는 스트레스가 채 되지 못하고 오히려 욕심이 내 소망을 이뤄줄 수 있는 형태가 되어 삶을 앞에서 이끌어주는 힘이 되었다는 게 느껴진다.
앞으로 나의 삶이 어느 곳을 향해서 나아갈지는 그 욕심이 정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이루고 싶은 모습, 지적과 육체적으로 갖추고 싶은 능력, 나의 것으로 소유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아울러서. 자신의 욕심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나면 지금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명확해진다. 바라지도 않던 것들을 갖게 될 때 보다 갖고 싶던 것을 쟁취해 낼 때의 만족감이 압도적으로 높으니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바라는 것이 있다면 다른 것들은 제쳐두고라도 이를 위해 시간을 할애하고 노력하는 것은 다른 그 어떤 의무도 없이 오직 '행복할 의무'만을 짊어지고 세상에 떨어진 인간에겐 지극히 당연한 순리에 가깝다. 어른들은 가정을 이루고 짊어져야 할 책임이 늘어나는 30, 40대가 되면 이처럼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사는 자유로움도 만끽하지 못한다고 하니, 아직 젊은 20대일 때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에서라도 더욱 열심히 욕심을 부릴 것이다. 뭐 당장 다른 20대들과도 달리 하고 싶은 일을 개척하며 나아가는 것을 보면 어른들이 말하는 나잇대에서도 충분히 자신만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만.
이런 욕심과 짝을 이뤄 훨씬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삶의 에너지원이 있다. 불안이다. 일반적인, 여느 정제되지 않은 불안은 포식자에게서 살기를 느낀 사냥감들처럼 지금 자신이 어디를 향하는지 상관없이 불안의 원인으로부터 도망가게 만들거나 의지 자체를 잃고 절망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불안의 근원을 인지하여 낱낱이 파헤치고, 결국 스스로 통제할 수 있도록 정제된 불안은 삶에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긴장감은 마라톤을 하듯 지치는 것을 잊고 계속해서 달릴 수 있는 에너지원이 된다. 한국에서 정규교육과정을 밟고 있는 아이들에게 부모가 심어놓은 '남들에게 뒤쳐서는 안 된다'는 불안감이 결과론적으론 효과적인 동기부여제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물론 그 불안감 또한 정제되지 않은 불안감을 타인이 강제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방향을 제한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수많은 부작용이 일어난다만).
결론적으로 욕심이 삶을 앞에서 끌고 나가는 힘이라면, 불안은 삶을 뒤에서 밀어서 나아가게 하는 형태의 힘이다.
세상의 그 어떤 것이던 그렇듯 욕심과 불안 두 가지 감정 모두 스스로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과해서는 안된다. 앞에서 끌고 가는 욕심이 과해지면 삶은 그 욕심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결국 욕심과 연결고리가 끊어져 원하는 것을 향해 노력하는 것 자체를 포기하게 된다. 뒤에서 미는 힘인 불안이 비대해지면 통제력을 넘어서서 곧장 방향을 잃어버리게 되거나, 과속하는 차량이 갑자기 핸들을 꺾듯 삶을 전복시켜 버릴 수 있다. 하지만 욕심과 불안이 적절히 제어되는 수준으로 연계된다면, 어느 하나만 있을 때완 전혀 다른 안정성이 생겨 더 큰 불안감도, 훨씬 큰 욕심도 통제력을 갖고 동력원으로 삼을 수 있게 된다. 이들은 인간으로서 떼어놓을 수 없는 감정들이니 마냥 묻어놓고 억제하며 살아가는 것 또한 좋은 방법이지만 자신의 능력이 된다면 필요에 따라 조절하여 삶에 이롭게 작용할 수 있도록 적절히 사용한다면 그 효용은 다른 어떤 방법보다 높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