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를
모순되게도 맹목적으로 우연히 존재하게 되었다는 유물론적, 무신론적, 진화론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나름의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기도 한 것이죠.
운동 선수리면 큰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고 정치인이라면 선거에 이겨 정치적 혹은 행정적 권한이 있는 지위를 갖게 되는 것일 것입니다. 어떤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죠.
모두가 경쟁이나 승부에서 타인을 패배시켜야 이룰 수 있는 것이죠. 근본적으로 법칙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죄인 것이죠. (요한 1서 3:4)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거의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그 방법의 부도덕성은 별로 고려하지도 않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인간이나 인간의 활동의 본연의 그것에서 이탈한 것으로서 결과는 허탄한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 본연의 활동의 성격이란 선악을 따질 필요가 없고 승패가 따르지 않는 그런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거나 목표를 이루었을 때 동료인간이 불이익을 받지 않는 그런 것이죠.
동료인간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모든 것은 부도덕한 것이거나 불법적인 것이죠.
또한 자신이 합격하면 혹은 어떤 지위를 갖게 되면 그걸 원했던 누군가가 좌절을 겪게 되는 그러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의식이 병적이 된 인간들은 그런 상황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러한 것들에 의미를 두고 있죠. 단지 병적인 정도가 아니라 범죄적인 상태인 것입니다.
죄라는 것은 표준에 빗나가거나 미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죠.
그렇지 않은 일들이 무한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필이면 그러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죠. 이상하지 않습니까? 뭔가 크게 잘못되었죠.
누군가가 좌절을 겪는 선거나 대회 같은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툼이나 극단적으로 전쟁 같은 것은 물론이고요.
그런데 그것은 불법적인 것으로 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부도덕한 것으로도 인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기기 위해 분투적인 노력을 하라는 것이고 응원하라는 것이고 투표하라는 것이죠. 심지어 전쟁을 일으키고 나가서 싸우라는 것입니다. 목숨을 잃어도 숭고한 희생이라고 하는 것이며 극단적으로는 교직자들도 하늘에서 상이 크다고 하는 것이죠.
인간이 의식이 돌이킬 수 없이 추악하고 기형적이 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아닌 것이죠. 악이 선으로 바뀌어 권장되는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상대를 패배시키거나 선악의 여부를 따질 필요가 없는 생산적이고 건설적이고 창의적이고 즐겁고 보람 있는 무한한 활동들이 있습니다. 모두 동료인간들에게 유익과 기쁨만을 주게 되는 일들이죠.
그런데 하필이면 인생에서 그런 악한 것들을 선택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목표를 삼아 추구하는 것입니까? 어떻게 그렇게 무지하고 악한 것입니까? 이상하지 않습니까?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부패한”]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시 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