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계가 더 현실적이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그 정신에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 먼저 있었습니다. 그것을 만들 필요나 목적, 의도, 계획 그리고 설계, 다자인, 원리나 법칙, 성질 등등 관련 지식들.
그런데 그런 모든 것도 물질적인 것입니까? 사실 유물론 자체도 물질적인 것입니까? 아마도 유물론자들은 그런 억지스러운 주장을 할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것이 저절로 생겨났다는 진화론 그 진화론도 맹목적으로 우연히 저절로 생겨난 것입니까? 아마도 진화론자들은 무모하게도 그런 식으로 주장할지 모르겠습니다.
돌이 깨져서 우연히 그렇게 생길 법 한 것도 인간이 의도적으로 어떤 목적으로 돌을 깨트려서 혹은 돌을 갈아서 그렇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지능이나 지성이 개입되었다고 하는 것이죠. 어떤 목적으로 그렇게 했다고 하는 것이죠.
진화론은 세포를 잘 보지 못했을 때 생긴 것인데 세포는 인간의 어떤 최첨단 공정시스템보다 정교하고 복잡하고 완전하죠. 부피적으로는 그 극히 작은 한 부분인 유전자의 구조와 기능, 그것만으로도 그렇다고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것의 극히 작은 한 요소인 분자 또 그것의 그러한 것인 전자 그것의 구성원리를 인간은 알아냈습니까? 볼 수 없으니 불가능하겠죠. 그래도 끈의 진동이라고 하는 가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끈에 대해서는요? 그것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습니까? 보는 것도 불가능하고 알 수도 없는 그런 것에 대해 우연히 맹목적으로 생겼다고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입니까?
숲에서는 청설모 두 마리가 서로 꼬리를 물고 땅으로 나무로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옆에 있는 까치와도 그렇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의 자태가 매우 귀엽게 느껴진다는 것을 알까요? 그 정도의 의식은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그 청설모나 까치나 나무들은 이처럼 글을 쓰지 못합니다. 그들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요? 물론 진화론에서는 존재의 목적이란 없다고 하긴 합니다. 결코 만족스러운 답이 아니죠. '... 론'에 의해서는 그렇지만 '... 원리'에 의하면 인간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것이죠. 인간의 삶의 의미와 기쁨의 다채로움과 풍성함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영적 존재로 하늘에 있다가 육전 존재인 인간으로 이 땅에 있었던 기간이 있었습니다. 또 다른 영적인 존재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았고 그는 수시로 예수에게 도전적인 접근을 하였다는 시사들이 있습니다.
누가 22장 31,32절입니다.
시몬, 시몬, 사탄이 여러분 모두를 밀처럼 체질하게 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의 믿음이 없어지지 않도록 당신을 위해 간구했습니다. 당신이 돌아오거든, 당신의 형제들을 강하게 하십시오.”
지금은 그렇게 못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사탄은 창조주나 예수에게 접근하여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는 사형을 당한 후 영으로 부활하였는데 그의 제자들에게 이를 알리기 위해 육신으로 화신하여 접근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전과 동일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은 번번이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알아보게 된 것은 그분의 말씀을 듣고 추리를 통해 확인한 후였습니다.
요즘은 양자역학의 발달로 인해 물질과 영의 경계가 모호해졌습니다. 물질의 어떤 현상에 대해서 유령현상이라고 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물질계 혹은 현상계는 늘 변하며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오히려 확고부동한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면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산출한 영적은 것은 본질적인 것이며 근원적인 것이며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고후 4:18)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현대적인 생각에 젖어 있는 사람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인류는 그 보이지 않는 영계 혹은 천계에 의존해 있습니다. 사탄의 영이건 하느님의 성령이건 영적인 것에 절대적인 영향의 받으며 의존해 있습니다.
무신적, 유물론적 경향이라는 것 자체가 영적인 입니다. 거짓된 영적인 것이죠.
영적인 것이 물질적인 것보다 더 현실적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러한 현실에 순응하는 사람만이 실제로 생존하는 것이 그의 영원한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