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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May 06. 2024

두 가지의 거시세계

두 가지의 거시세계 


인간이 자가당착을 일으키지 않고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 수 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그럴듯해 보이는 주장은 혼란을 일으키게도 하는 것입니다. 아이디어가 기발하다고 느껴도 실용적인 적용점은 없는 경우가 많은 일종의 언어유희, 사고유희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과학계의 새로운 학설 가운데도 그렇게 느껴지는 것들이 많죠. 인간의 의식이나 시공간, 물질이나 우주에 대한 이론 가운데서도 그러한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논쟁의 세계에 있는 것들이죠.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 영역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용적인 지혜를 얻으려면 불변성이 있는 진리를 근거로 추리를 하면 됩니다. 이 자체도 불변성의 진리입니다. (야고보 1:17.18)


일 년 후의 지구나 태양의 위치는 정해져 있습니다. 미래가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것들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일 아침에도 반드시 태양이 떠오를 것이고 그 시간도 정확히 알 수 있죠. 이처럼 미래를 확정하는 것도 인간이 하는 일이죠. 인간이 모르지만 미래가 확정되어 있는 것은 무한합니다. 인간은 존재하는 것들의 한정된 단면만을 볼 수 있고 보이는 것들의 미래를 알 수 있죠.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거시적인 것들의 미래도 그와 같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꼭 천체만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산에 있는 큰 바위 같은 것도 내일도 여전히 그곳에 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죠. 그러나 그러한 것은 한정된 시간 내에서 입니다. 영원히 그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죠. 인간은 관련된 진리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천 년 전 고려시대에 지금의 서울이라는 지역이 천 년 후에도 그대로 있을 것이라는 예측은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이라는 지역은 그대로 있죠. 아마도 지구 전역의 대부분의 지역이 그러할 것입니다. 지역이라는 것에는 의식 즉 자유의지가 없기 때문이죠. 그러나 천 년 전의 사람이 지금 서울의 모습이 이처럼 될 것이라는 것은 상상불가한 것입니다. 인구 천만의 대도시가 되어 아파트와 자동차가 밀집될 것이라는 것을요. 


숲에 가면 멧돼지를 보게 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보게 되는 지점이나 시간도 다 다르죠. 그 점에 대해 내일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동물에게는 행동의 자유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죠. 미래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어떤 큰 소나무가 있다면 하루 사이에 누군가가 베어버리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것을 확신할 수 있죠. 식물은 이동의 자유라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거시세계에도 미래가 정해져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이런 점과 관련하여 단순히 지적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우리 개개인이 미래에 존재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죠. 그런 점이 실용적인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 대한 진리는 학자들이 하는 것처럼 인간이 모색한다고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시도는 법칙을 거스리는 그리고 범죄적인 무지에 기인한 시도로서 거짓을 산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결코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그리고 그 모든 것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한꺼번에 다 볼 수 없습니다. 그 보이지 않는 구조와 원리들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지극히 단편적으로 알게 된 몇몇 가지 점에서 무모한 추리를 하는 것뿐인 것이죠. 


그것들을 다 온전하게 정확하게 알아야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물의 창조주만이 그게 가능한 것이죠. 


거시적인 것이라도 인간에게 맡겨진 것의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정해져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아닌 것이죠. 인간은 자유도덕행위자로도 정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000년 후에 자신이 생존해 있을 것인가 하는 것도 그러합니다 인간의 미래의 생명은 인간이 스스로 정하는 것입니다. 미리 정해져 있다면 우주에 의식을 가진 존재는 없는 것이며 우주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죠. 가장 큰 신비, 영원한 신비이긴 하지만 관련된 진실은 그러합니다. 


이미 밝혀진 것들은 인간에게 영원히 속하게 됩니다. (신명기 29:29) 인간이 알게 된 진리들은 인간세상에 영원히 남아 활용되죠, 그러한 지식들은 계속 누적되게 됩니다.  인간이 보유한 지식이 줄어든다는 것은 있을 수 없죠. 


그러한 지식 중에는 미래에 관한 지식도 포함됩니다. 그중 하나에는 1,000년 이후에는 지구가 낙원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것이죠. 물론 이는 과학적 물질문명이 극에 달하게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우선 지구전역이 자연재해나 이상기온이 전혀 없는 쾌적한 곳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죠. 병든 인간이나 늙은 인간, 종교인이나 정치인처럼 거짓말쟁이나 범죄자들 즉 불의한 자나 악인이 없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 37:10, 11)


이는 태양이 천년 후에도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만큼이나 확실한 것입니다. 자연법칙처럼 확실성이 있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죠. 밤이 지나면 낮이 오는 것처럼 확실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25) 아브라함도 그곳을 바라며 살았다고 하죠. (히브리 11:10)


문제는 자신이 그때 그곳에 있게 될 것이냐 하는 것이죠. 아브라함처럼요. 아브라함은 창조주의 관점으로 지금도 살아있다고 합니다. (마가 12:26, 27)


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창조주를 알고 창조의 법에 순응하는 것이죠.(예레미야 31:33~36)


이 창조의식이 없는 인간들이 세상에서 소위 학자가 되어 이런저런 이론들을 고안해 내어 책도 쓰고 강의도 하지만 학자들마다 주장이 다르고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는 것입니다. 다만 확립된 것들은 말씀과 일치하죠. 인간이 만든 법이 창조의 법, 자연의 법과 일치하면 중복 즉 불필요한 것이고 일치하지 않으면 틀린 것 즉 해로운 것이듯이 인간 학자들의 주장이라는 것도 그러한 면이 있습니다. 


미시의 세계이건 거시의 세계이건 궁극의 본질은 인간이 알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물질의 세계이건 의식의 세계이건 그렇죠. (전도서 3:11)


인간은 계속 밝혀 내어 지식을 증가시켜 갈 것입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것은 선언된 창조의 법에 따라야 합니다. (신명기 29:29) 


이러한 선택을 하는 사람만이 그 선택에 따라 1,000년 후 10,000년 후에도 존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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