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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May 14. 2024

무조건

무조건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이나 그 현상이 같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뭔가에 대해 부당한 의심을 품고 이탈하여 나왔는데 온갖 오류나 고생을 다 겪고 나서 처음에 그 의심이나 이탈이 잘못되었다는 확고한 결론에 이르게 되어 원상 복구했을 때 결과적으로는 처음의 상태로 돌아온 것과 마찬가지이죠. 


그렇게라도 되면 좋겠지만 인간은 결코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죠. 전지를 바탕으로 해서야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애초에 그쪽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해 보려는 주제넘음을 보이지 말았어야죠. 


인간은 창조의 법에 무조건적으로 순종해야 하며 그 법칙에는 도덕법칙이 포함되어 있죠. 


법칙은 인간이 그 조건을 따질 겨를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법칙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한 아무런 의심 없이 순응해야 하는 것이죠. 안 다치려면 불에는 무조건 손을 넣지 말아야죠. 데는지 확인하려고 시도하는 경우 전혀 예외 없이 손상을 입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부조리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인식 못하는데서 옵니다. 진화론이나 스스로 신적인 존재라고 주장하는 양극단 사이의 모든 이론이 그러합니다. 두뇌 자체가 지식을 얻기가 불가능한 구조가 됩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법칙을 자신에게 적용하는 것뿐입니다. 이를 무시하는 다른 모든 시도는 파멸에 이를 뿐입니다. 죽이기도 하고 스스로도 죽고 있죠.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어 그 선택을 자동적으로 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의식적으로 해야 하죠. 자동적으로 법칙에 순응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인간은 그런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 자유를 사용하여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 존재는 소멸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렇게 주어진 조건을 따질 겨를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그런 선택을 한 해로운 결과는 완전하게 입증되어 있습니다. 판례가 생겼으므로 앞으로 그렇게 하는 경우 시험해 보고 확인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인간은 이런 면으로의 두려움을 가져야 하며 이는 합당하고 경건한 두려움입니다. 의식을 위축시키는 병적인 두려움이 아닙니다. 두려움이 있다면 가져야 할 바로 그 두려움이죠.(시 111:10  빌립보 2:12)


진정한 사랑은 부정적인, 병적인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해 줍니다.(요한 1서 4:18) 가장 큰 법칙은 자유의 법칙을 제외하곤 사랑의 법칙이죠. 창조주를 사랑해서, 그 법을 사랑해서 기쁨으로 기꺼이 순종하기 때문이죠. (시편 119:163~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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