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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May 31. 2024

부인할수록

부인할수록 


사람이 애착을 갖는 대상이 자신이 경험한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기애나 자의식에 빠지게 되는 성향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죠. 의식이 자기중심적, 자기본위적이 되는 것이죠. 심지어 자아제일주의적, 유아독존적 의식에 빠지게 되기도 하죠.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것이 자기 자신이고 자신이 편하게 느껴지고 자신에게 친절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신을 사랑하게 되어있는 측면도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 욕망, 취향뿐 아니라 자신의 과거, 자신의 추억, 자신의 고향, 자신의 지인들을 소중히 여길 수 있죠. 


대다수의 가정에서는 인간이 출생 후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 창조와 창조주에 대한 것을 배우지 않죠. 대신 진화론 같은 무신적 사상들을 배우게 되죠. 세상에 가장 확실한 존재는 자신이 되는 것이죠. 심지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것은 자신이라는 사상에 빠질 수도 있죠. 


아무리 도덕적이고 덕이 뛰어나고 선행을 해도 그것은 자기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한편 자신과 관련된 것을 소중히 여기고 집착하는 것에 대해 부질없는 것이라고 여기는 철학도 있습니다. 


자신이 지극히 못마땅하여 밉기 짝이 없어 극단적인 선택은 하는 경우도 있고 타인에 대한 근거 없는 미움을 갖게 되기도 하죠. 


자신에게 처해진 조건이 열악하다고 느낄 때 그렇게 될 수 있겠죠. 


극단적인 자기애와 자기 증오사이에 있는 인간들이 그 점과 관련된 확립된 원칙을 배우지 못하여 죽을 때까지 그런 상태는 방치될 수 있습니다. 


삶의 목적이 아름다운 자신의 완성이라고 할 때 이점에 있어 절망적인 역부족을 절감하게 되기도 하죠. 자포자기하는 것입니다. 우울증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신경증을 겪기도 하죠. 


중요하고 또 실제로 필요한 것은 관련된 원칙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의 고통의 기둥을 메고 계속 나를 따르십시오.”(누가 9:23)


인생길에 있어서 안심하고 따를 수 있는 유일한 지도자는 예수이죠. 생명의 길로의 인도자이죠. 


자신을 부인하려면 그 기준이 있어야 하죠. 그와 일치하지 않은 모든 생각, 감정, 습관, 태도, 인성, 관계, 언행을 시정하고 버려야 하는 것이죠. 이처럼 자신을 부인하는 데는 고통이 따르죠. 


대부분의 인간은 어차피 죽는다고 즉 멸망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종교나 어떤 철학을 갖고 각기 어떤 다양한 방법으로 살던 그 모두는 멸망의 길입니다. 물론 어떤 종교에 속해 그 교리(영혼불멸, 윤회 등)에 따라 사후의 삶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어도 모든 종교인들의 삶의 행태는 현세적이며 멸성적이라 결코 생명의 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종교는 이 악하고 거짓된 세상의 대표적인 부분일 뿐입니다. 


그 세상에서 배운 사상, 몸에 밴 습관, 사람들과의 관계 등등을 버리거나 중단하거나 포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고통이나 상실, 희생이 따르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에도 그 이상의 보상이 따르고 가까운 미래에 영생이 보장되죠. (마가 10:29, 30)


인간은 외부의 경쟁상대와 싸울 것이 아니라 의의 표준, 원칙, 진리와 일치하지 않게 형성된 내면의 모든 것과 그것을 쫓아내는 전쟁을 해야 합니다. 외부로부터 오는 유혹과 압력에 대해서도요.  


그런 싸움은 전능자의 지원을 받아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싸움입니다.(고전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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