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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법칙전달자 Jul 25. 2024

두 나무

두 나무 


모세의 지팡이가 나일강물에 닿자 아마도 그지점부터 나일강물은 빨갛게 물들어 갔을 것입니다. 그런 과정 없이 그리고 이집트의 사람들이 보지 않은 가운데 나일강이 빨갛게 물들어 있는데 모세가 이는 여호와가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하였다면 사람들은 쉽게 인지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빨갛게 물드는 것이 지팡이가 닿는 지점부터이고 그리고 지팡이는 모세가, 모세는 여호와로부터 왔으니 이는 여호와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쉽게 인지할 수 있었죠. 


사람들은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매개가 필요한 것입니다. 어떤 개념을 얻으려면요. 이는 관념법칙으로도 설명이 되죠. 창조주가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고 인간은 법칙에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구속을 받는 것이라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도 주로 그러한 비유를 사용하여 사람들에게 개념을 심어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로만 너희가 창조의 법에 순응하면 영원히 행복할 것이라고 하는 경우 잘 못 알아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을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창조주 역시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매개를 사용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개의 나무를 만들어 놓고 하나는 선악이 무엇인지는 창조주가 결정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그 나무의 실과를 먹지 않음으로써 그 점을 인정한다는 것을 나타낸다는 것이고 그렇다는 전제하에서 영원한 생명을 보장한다는 의미에서 생명나무를 둔 것이었죠. 


지금은 들 다 없어졌죠. 인간의 의식의 성장으로 인해 그런 것 없이도 그런 인식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도 더 이상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매개나 비유나 상징이 없이도 인간이 진리에 대한 이해나 개념을 가질 수 있게 됨을 시사한 적이 있죠. (요한 16:25)


그것은 영에 의해 가능한 것입니다. 영이란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현상을 낳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죠. 

영적인 사람이 누리는 특권입니다.  영적인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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