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사상학

얼마나 무모한가

by 법칙전달자

얼마나 무모한가


시편 2편에는 나라와 민족들, 통치자들이나 정치인들이 도모하는 일들이 허사임이 선언되어 있습니다. 나라들이 그러하다면 민중들 소위 국민들은 더 그러합니다.


그들이 법이나 정책이나 제도, 정당이나 통치자를 바꾸면 세상이 더 살기 좋은 될 거라는 허황되기 짝이 없는 기대를 갖고 열렬한 시도를 할지 모르지만 터무니없이 무모하고 무지한 것입니다.


깨어진 계란 껍데기 조각들을 모아서 원래의 상태로 돌리려 하는 것이나 이미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열차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침몰해 가는 배의 대합실의 의자의 배치를 바꾸어 배의 침몰을 막아보겠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인간들은 자력으로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어 있는데 진시황은 불로장생을 위해 많은 시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수은중독으로 죽었다고 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무지에 입각한 무모한 시도를, 어리석기 짝이 없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통치자들이 종종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라고도 하는데 인민들도 소위 투쟁에 해당되는 행동들을 하는 것이죠. 어떤 나라들의 어떤 시기에는 인민의 적이라고 하면서 광범위한 린치가 행해지기도 하였다고도 하는데 그 와중에 수 천만 명이 죽었다고도 합니다.


정치, 철학, 종교는 애초에 답이 없는 영역입니다. 답을 구하려고 하는 모든 시도와 노력은 허사입니다.

프랑스왕은 머리는 대머리인가 아닌가?(프랑스에는 왕이 없다.) 9는 하루에 몇 끼를 먹는가? 와 같은 질문에 답을 알아내려는 것과 네모난 원을 작도하는 방법을 알아내려는 것과 같이 모모하고 무지에 입각한 것입니다.

인간이 아직 몰라도 답을 알을 알 수 영역에서 노력을 하는 것만이 의미 있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바둑을 둘 때 그 상황에서 최선의 수는 있죠. 그것을 그 당시에는 찾아내지 못한다 해도 답이 있는 것입니다. 과학의 영역에서도 그렇습니다. 인간이 답을 찾아낸 것도 많지만 답은 확실히 있지만 현시점에서 알아내지 못하는 것일 뿐인 것도 무한하죠. 그런 것은 계속 시도할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답을 알아내기가 성질상 불가능한 것에 대해 그렇게 하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사실 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답은 이미 선언되어 있습니다. 법칙으로 자연에 내재되어 있기도 한 것입니다. 그것을 무시해서는 답이 없습니다.


통치와 관련된 것은 “창조주만이 성공적으로 통치할 수 있다.”가 답입니다. 그럴 자격과 능력이 있는 것이죠.

창조주에 의해 언명된 것이 종교와 철학에서 알아내려고 하는 유일한 답입니다.

그 간명한 것들을 무시하고 달리 답을 얻으려는 모든 시도는 원리상 애초에 절망적입니다.


세상의 전정한 평화와 자유, 부는 인간의 정치적인 노력으로 결코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념도 정책도 제도도 법도 어떤 정치인이나 정당도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애초에 불가합니다. 사랑과 의와 능력과 지혜가 온전히 갖춘 존재만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철저하게 진리와 선으로 통치하여야만 가능합니다. 어떤 인간이 1/100이라도 그에 미친다는 것입니까?


쩝쩝 씹어 음식을 먹고 잠도 자야 하고 화장실에 가서 똥도 싸고 밑도 닦아야 하는 인간들은 정치라는 것을 하기에 애초에 적합하지 않은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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