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추상적 개념들은 허상이나 뜬 구름 같은 것이 아닙니다. 어떤 실체보다도 더 실제적인 것입니다. 그 실체가 있게 한 원인이죠.
의도나 뜻, 목적의식이라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의도라는 것을 가지고 행동하기 시작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존재 자체가 어떤 목적에 의한 것입니다. 사유의 법칙 중 충족이유율이 그것을 말해주죠.
법칙은 그것을 말해주지만 진화론 같은 것은 그것을 거부하죠. 악한 목적을 가졌음을 증명할 뿐인 것입니다.
목적이란 ‘도달하고자 하는 최종 결과’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 을 위해서’라는 표현과 직결되어 있기도 하죠.
인간들은 인생의 목적에 관심을 갖기도 합니다. 알 수 없으니 알기를 포기하가도 합니다.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려지기도 하였죠.
‘인생의 목적’을 하나의 영적 사물이라고 할 때 사물이란 모양, 크기, 색과 같은 여러 측면들이 있죠. 즉 그것을 나타내는 서로 다른 상충되지 않은 개념들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도달되는 죽음이라는 결과는 결코 만족스럽지 않죠. “죽기 위해서 태어났나, 죽는데 왜 사나?”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어떤 것의 존재 목적은 그 제작자가 가장 정확히 아는 것인데 인생을 제작자를 알 수 없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포기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실제로 하는 언행들은 비록 그것이 무의식적인 것일지언정 어떤 의도가 잇는 것입니다. 충족이유율에 따라서요.
이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런 무의식적 의도에 따라서가 아니라 뭔가 하고자 할 때는 의식적으로 목표의식, 목적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이지, 이 행동을 왜 하려고 하는 것이지? 하고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물론 많은 경우 구체적은 목표의식을 가지고 혹은 고의로 그렇게 합니다. 그 의도가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어서 문제죠.
무의식적인 것은 더욱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러려면 그에 대한 지침들을 알고 있어야 하죠. 그 점에 대한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인간 스스로 알아낼 수 없습니다. 제각기 임의적인 갖게 되는 틀린 생각에 의한 것일 뿐이죠.
그러니 인간들이 하는 언행이 악하고 거짓되고 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는 그런 것들로 가득 차 있어 난장판이죠.
잘 확립된 기본 법칙들에 대해 무지하거나 고의로 무시하는 것이 원인입니다. 존재 가치를 영구적으로 상실하게 됩니다.
존재 목적이 소멸되어 쓰레기가 되어 소멸을 기다리는 그런 존재가 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