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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무정

by 법칙전달자

시간의 무정


어떤 노래 가사에 “시간이라는 무정한 배”라는 표현이 있죠. 사실 시간만 무정한 것은 아닙니다. 무정이라는 것은 자연법칙의 한 속성입니다. 인간의 사적인 상황을 조금도 참작해 주지 않는 것이죠.

물론 인간은 의식을 투영시켜 의인화하여 심리적으로 고통을 완화하려 할지 모르지만 자연은 눈 하나 깜짝 안 합니다.


인간이 이 법칙과 관련하여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순응하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무기력할 뿐입니다. 어찌할 바 없이 늙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늙고 죽는 것 자체가 법칙에 대한 불순응의 결과입니다. 법칙의 무정함이 오히려 희망을 주는 대목입니다.


법칙은 인간의 이에 대한 인지여부나 관심여부에 전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작용합니다. 시공을 초월한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구속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선택하기에 따라 조금의 의심의 여지없이 이 법칙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시간이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퇴락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회복도 가져오는 것입니다. 어떤 작은 산이 화산으로 전체가 잿더미가 되었어도 수 십 년 정도가 지나면 생태계가 회복되어 있는 것이죠.


의식 있는 존재에게 작용하는 자유의 법칙도 그러합니다. 인간이 심은 대로 거둔 결과에 대해 후회하여 시간에게 과거로 돌아가 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또 그 형별을 지연시키기 위해 늦게 흐르거나 멈추어 달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실수로 독을 삼켰는데 독이 아무런 손상을 가져오기를 바랄 수 없습니다. 아기가 발을 헛디뎌 낭떠러지로 떨어졌는데 죄 없는 아기라고 해서 천사가 받아 주어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은 헛될 뿐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관련 법칙의 극히 일부밖에 알지 못합니다. 수백 명의 사람이 공중에 떠서 이동되는 것은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어서 일어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법칙(양력)을 활용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죠.

법을 잘 알고 활용하면 기적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유전법칙은 잘 알려져 있지만 동가상응의 법칙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노쇠와 죽음은 유전법칙에 따른 것입니다. 후성유전이죠. 노쇠유전자나 사망유전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노쇠나 죽음이 법칙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또한 자유의 법칙에 따라 인간은 법칙거스름도 제지받지 않고 할 수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노쇠와 죽음이 그 때문에 수반되는 것이죠.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가 원인이 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시간을 정지시켜 벌을 피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법칙이란 창조주가 만물을 운영하기 위한 조건이나 마련입니다.

인간에게 절대적인 자유를 부여하여 심은 대로 가두게 되는 결과와는 별개로 타의에 의해 심어진 해로운 결과를 입지 않도록 하는 마련도 있는 것입니다. 인과법칙에서 원인이란 꼭 자신에 의한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타인에 의한 원인이라는 것이 있어서 억울하게 당하는 손상이라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동가상응의 법칙, 대속의 마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가 이를 수용하여 순응하면 그 해로움의 영구적인 영향이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죠.


구체적으로 예수의 대속희생입니다.


이는 일종의 법칙입니다. 법칙이란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무정합니다. 예외 없이 고려 없이 철저하게 적용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는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면으로 더 강하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속에 순응하는 모두는 전혀 예외 없이 병과 노쇠, 죽음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죠.


인간이 이를 알지 못해서 죽음에서 피하지 못하는 것보다 이에 순응해서 죽음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 다 확실한 것이죠.


시간의 무정함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경과하면 반드시 세상은 낙원으로, 인간은 완전성으로 회복되어 있습니다. 그 시간을 누리게 될 것이냐 하는 것은 개인이 선택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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