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잔치
대변 후 항문을 씻거나 식사 후 양치질을 하는 동물은 거의 없습니다. 떼를 닦아내는 방법으로 목욕을 하는 동물도요. 화장이나 빗질을 하거나 옷을 입어야 하는 동물도 없죠.
동물의 시체도 악취를 오랫동안 풍기도록 방치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식물의 시체라 할 수 있는 낙엽은 조금의 불쾌감도 주지 않습니다.
동물의 배설물도 인간의 것처럼 그렇게 더럽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배설물은 언제부터 고약하게 느껴진 것일까요? 육식을 한 후부터 더 그렇게 된 것일까요?
옷을 입은 것은 인간 존재의 거의 시작과 더불어서입니다. 우선은 성기를 가리기 위한 용도이고 나중에는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용도가 추가되었고 점점 다른 용도가 더해졌을 것입니다.
인간의 몸은 동물의 그것에 비해 번잡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손발톱을 깎거나 털을 깎는 동물도 거의 없죠.
곤충들은 언제부터 인간들을 성가시게 하였고 어떤 짐승들은 인간에게 위협이 된 것입니까?
인간들은 언제부터 거짓말이나 욕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고 화라는 것을 내기 시작한 것입니까?
걱정, 슬픔, 불안, 수치, 두려움 같은 것들은요. 편견이나 탐욕, 야심 같은 것은요?
언제부터 자존심이나 주제넘음, 교만 같은 것이 있게 된 것입니까?
내가 다른 인간들을 다스려야겠다는 생각은요?
인간은 여러 가지 비정상에 쩔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늙음이 인간보다 추한 동물들도 없습니다. 질병의 종류도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습니다.
한편 인간에게는 지적, 정서적, 덕적, 영적 기능들이 있습니다. 뇌가 근본적으로 다른 동물과는 다르죠. 상상력과 창의력이 있죠. 영감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성, 오성, 감성 기능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비정상적인 육적 조건이나 상태에 지대한 영향을 받습니다. 방귀를 뽕뽕 뀌어 냄새를 풍기면서 사랑의 고상한 구현방법을 상상하는 것이죠.
신체적인 악조건들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아 사고기능과 질이 현저하게 떨어지다가 결국 정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상적인 사고를 한다든지 상상력과 창의력을 본연의 방법과 질로 발휘하는 경우도 거의 없습니다.
나쁜 것들과 밀접한 관련이 되어 있죠. 창의력을 발휘하여 만든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등은 모두 악한 것, 구역질 날 정도 악한 것을 다루죠. 인간은 그 정신도 비정상, 악에 쩔어있습니다. 매체에서 순수하게 선한 것을 찾으려 해도 전혀 발견되지 않습니다.
짐승들이 인간보다 차라리 월등히 우월한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정치도 종교도 없습니다. 경제도 돈도 없습니다. 거짓과 악이, 탐욕이 없는 것이죠. 인간에 대한 본능적인 순종성을 가지고 있어 인간이 길들일 수 있습니다. 차별이나 편견이라는 것도 없습니다.
인간은 그 본연의 상태로 회복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회복 불가능한 인간들은 죽어 없어지는 것이 그나마 법칙에 마지막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체들로 짐승들이 잔치를 해야죠.
모든 새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이리 오너라. 하느님의 큰 만찬에 함께 모여, 왕들의 살과 군대 대장들의 살과 힘 있는 자들의 살과 말들과 그 위에 탄 자들의 살과 또 자유인이든 종이든 작은 자든 큰 자든 모든 사람의 살을 먹어라.” 그리고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를 채웠다.(계시 19:17,18,21)
너와 너의 모든 군대와 너와 함께하는 민족들이 쓰러질 것이다. 내가 온갖 맹금과 들짐승에게 너를 먹이로 주겠다.”(에스겔 39:4)
인간들은 차라리 짐승들의 먹이가 되는 것이 마땅하며 곧 그렇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