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의식
인간은 이전 어느 때보다 누적된 지식이 많다고 할지 모르지만 상대적인 면으로는 그 반대라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절대적 지식의 양이 100배가 더 많아져도 비중적으로는 전보다 100분의 1도 못된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알면 알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알 필요가 있는 지식의 양이 더 많이 관찰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알 수 없음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로 알게 된 것이 오히려 허탈감을 느낄 정도로 실제로 아는 것이 없다고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공간이라고 하는 것에 실제 있는 것들로 확실히 밝혀진 것만으로도 수십 가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공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시각의 수도 여러 가지입니다.
더구나 의식이 무엇인지에 대해 들어서면 사실상 오리무중입니다.
인간이 감각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밝혀진 것은 사실상 미미한 수준입니다. 사과를 맛보았을 때 사과 맛을 느끼는 원리나 ‘도’ 소리를 ‘도’라고 느끼는 원리정도에조차 관련지식이 실제적으로는 원시적입니다.
인간이 도저히 먹을 수 없다고 느끼는 것을 다른 동물들은 매우 맛이게 먹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동물들 중에는 이나 혀가 있는 것들도 있고 꿀꺽 삼키는 것들도 있는데 그것들의 그 먹는 것과 관련된 의식작용도 잘 알 수 없습니다.
식물들이 물이나 무기물, 공기 등을 흡수할 때 어떤 의식이 작용하는 것입니까?
일견 터무니없어 보이는 지식들을 그럴듯하게 발표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물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 물 분자가 아름답게 배열을 한다는 것이죠. 그렇지 않은 물과는 현저하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식물에게도 애정표현을 하면 훨씬 잘 자라고 아름답게 자란다고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전자에게도 의식이 있다고 하는 것이죠.
이런 주장의 신빙성에 대해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맛이나 소리 등 일상적인 느낌 하나가 무한한 신비와 신성이 깃들여 있다는 것입니다. 커피를 마실 때의 그 느낌을 느낄 수 있는 로봇을 인간이 언제나 만들 수 있는 것입니까? 커피를 책상에 떨어트리면 책상이 그와 같은 맛을 느끼는 것이 가능할 수 있습니까?
그런 기능이 없으므로 불가능하죠. 어떤 동물이 인간처럼 노래를 부를 수 있고 감상할 수 있습니까? 그와 같은 정도로 음악과 관련 의식이 작용하는 그런 것을 만들 정도로 인간의 지능이 발전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매우 초보적이고 원시적이며 관련 지식도 실제로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 그 무지한 정도에 비해 너무나 주제넘고 인식 부재라는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양상은 너무 지독하게 그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겸손과 온유가 기본적으로 깊이 몸에 배어있어야 하고 늘 감사하는 가운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한 단편만이라도 희미하게나마 인식을 한다면 그러해야 하는 것이죠.
주어진 것은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경악스러운 무한한 신비의 지식과 신성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특히 사랑이요.
창조주의 말씀을 통해서만 아는 것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