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킬 수
엎질러진 물이라는 표현이 있죠. 산산이 깨진 계란이나 컵을 원상복구 할 수 있습니까?
인생을 수 십 년 살았으면 형성된 인격이라는 것이 있으며 이미 저질러진 과거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의 성격이 굳어진 것도 돌이키기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죠. 좋지 않은 특성들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후회에 후회를 거듭하게 되는 쓰라린 과오라는 것도 있죠.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언행들이죠.
그의 여생은 그로 인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까? 그는 그렇게 굳어진 상태에서 삶을 마칠 것입니까?
인생이 내쉬는 한숨 가운데는 그러한 한탄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탄생 시와 어린 시절의, 타인에 의해 주어진 조건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40 정도 되었다면 자신에 의해 주어진 조건이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불만스러운 현재의 조건, 처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까?. 대부분 그렇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목이 떨어질 때까지 그렇게 살아야죠.
사는 것이 별 의미가 없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인생이란 그러합니다.
인간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아우성쳐도 스스로는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 있습니다.
그러니 죽을 때까지 술이나 마시면서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고 상상력과 창의력이 있어 그것으로 만든 것이 지금과 같은 무신적 세상입니다. 신을 배제하고도 모든 것을 잘 될 것으로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인간의 정치, 통치가 그러한 무모하기 짝이 없는 헛된 희망을 가지고 계속 추구하죠. 종교도 그것을 지지하고 지원하고 있는 형국이죠.
그러나 모든 인간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를 연상케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이나 과거에 속박되어 있는 것은 작은 일이죠.
인간이 부조리나 극한 상황이라고 말하는 상황은 스스로 창출한 것입니다. 자유의지, 이성, 상상력, 창의력 등을 잘못 사용한 결과이죠.
결론에 이르면 현재의 끔찍함은 기억나지도 않을 미래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인간의 힘으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죠.
내가 너희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여호와의 말이다. ‘그것은 재앙이 아니라 평화를 주려는 생각이니, 너희가 미래와 희망을 갖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나를 부르며 와서 나에게 기도할 것이고, 나는 너희의 말을 들어줄 것이다.’-예레미야 29:11,12
인간들이 굴레에서, 멍에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창조주는 그에서 벗어나게 해 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죠. 벗어나지 못하면 인간은 현재의 우환, 재앙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죠. 자유와 평화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그러나 돈 한 푼 들지 않는 방법으로 한 번도 누려 본 적이 없는 진정한 평화가 넘치는 그러한 미래를 현실화할 수 있죠.
성구에서 알려주는바 그대로입니다.
사실 인간에게 원상복구는 의미가 없습니다. 원래가, 초기에 주어진 조건이 애초부터 처참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창조주의 의지, 이성, 상상력, 창의력에 의해 완전하게 새롭게 탄생된 재창조된 삶을 살게 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