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의 일리

by 법칙전달자

통치의 일리


예전에는 종, 사환, 노비, 집사 등의 공식적인 신분과 직업이 있었습니다. 성서시대에도 허용되었죠.


허용된 것은 그것이 본래적 즉 자연스럽거나 바람직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일부다처제도 허용되었는데 같은 이유에서 입니다.


어떤 이혼제도에 대해서도 그것이 비정하고 불의한 것이었다고 예수는 지적한 바가 있습니다.


인간의 인간에 대한 통치는 원리상 해롭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전도 8:9)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죠. 그러나 창조주에 의해 허용되어 있고 통치권을 가진 자나 그 통치에 대해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저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원칙으로 두고 있습니다. 오히려 공경하고 순종하고 복종하라는 것이었죠.


이스라엘에도 종을 자유케 하는 제도를 두었는데 종이 자유를 원하지 않고 종으로 계속 살기를 원할 경우의 지침도 있었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족장도 많은 종을 두어 그들을 부렸습니다. 개별적으로 힘들게 노동을 하면 3의 수확을 거두게 되는데 지혜자의 지시에 따라 협업이나 분업을 한다면 20 이상의 수확 아니 10 정도만의 수확이라도 거두게 될 경우 7을 너희가 갖고 3을 세금으로 내라고 할 때 기꺼이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이 후덕하여 종을 가족처럼 대해 준다고 할 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충성심으로 주인을 섬기려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의 휘하에 안정감을 가지며 살고자 할 것입니다.


군주는 국가의 공복이라는 말도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통치권이란 그렇다는 전제하에 정당성을 갖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상적인 통치가 하나이어야 하죠. 그런 통치권이 다수이고 세력화되어 확장하려 하고 그 경계선에서 분쟁거리가 생기면 상황이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시대에도 통치자들의 연합세력 간에 전쟁이 있었고 아브라함의 종들도 군사로서의 역할을 하여 아브라함의 지휘에 따라 전투를 하였습니다.


비순수성의 개입이 커지게 되고 그 비정상성이 공식화되어 초기의 이상성에서 크게 벗어나 변질되게 되죠.

권력을 얻으려고 혈육도 가차 없이 죽이는 사례가 일상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부나 국가가 기획적으로 하는 공적인 봉사(?)를 통해 사회는 크게 발전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통제가 안정을 가져오는 측면이 있죠.


인간 통치자는 본래가 바람직하지 않지만 이스라엘 백성들도 유별나게 인간 통치자가 있어야겠다고 하여 사무엘에게 강력하게 요청을 하였고 사무엘은 그 폐단을 경고하였지만 결국은 이스라엘은 왕정시대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권한은 세습되었고 영웅은 자주 나지 않는다고 하기도 하여 소위 평가받는 군주는 소수이죠. 그리고 그런 군주들도 압제를 행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윗이나 솔로몬 조차도요.


권력의식이라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종으로서 순수하게 섬기려 한다면 종이 무슨 권력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근본적인 모순입니다.


중략하고, 인간은 원래 창조주의 통치 말고 다른 통치가 필요 없었습니다. 통치는 법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창조주는 단 하나의 법: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부작위법 하나만을 두었을 뿐입니다. 그 법에 순종을 함으로써 그 통치권을 인정하는 것이 되는 것이죠.


그러나 그 법이 지켜지지 않은 바람에 6,000년 정도의 인간 통치, 1000년간의 하늘 정부의 통치가 있게 되었죠. 인간 통치의 배후는 사탄이죠. 사탄이 창조주의 통치는 필요도 없고 정당하지도 않다는 도전을 했기 때문에 인간 통치가 허용되었기 때문이죠.


인간은 한 혈통이고 한 가족이죠. 가족이 공동으로 밭을 개간하여 수확을 거둔다면 도대체 누가 누구한테 세금을 걷고 권력을 행사한다는 말입니까? 모두가 서로를 진정으로 위할 텐데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그러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봉사하면서 세금을 내라거나 임금을 요구합니까? 그 봉사자체가 즐거운 것입니다. 정치적 사고나 행위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공동으로 지구를 개척하여 공동으로 결실을 누릴 것입니다. 공동창조자라고 하는 것이죠.


아담은 그런 식으로 지구를 낙원으로 확장해 나갈 전망이 있었습니다.


6,000년이 지났지만 오늘날 지구는 낙원으로 개척되어 있습니까? 터무니없죠.


그렇게 되는 것은 천년이 더 지나서인데 하늘왕국의 통치 후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영적인 낙원은 형성되어 있습니다. 예수와 제자들의 시대에는 수만 정도의 사람들이 그러한 영적 낙원을 이루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천만 정도이고요.


문자적, 물질적 낙원이 더 확실하게 이루어진다는 증거이죠.


인간의 자신에 대한 통치권은 영원히 유지되죠. 그것을 동료인간의 행복을 위해 사용하면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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